Beyond the interzone

공포와 고립에 빠졌던 라프 시몬스가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재기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백한다.

Fashion Eye
Beyond the interzone

1980년대 대부분의 10대들이 그러했듯 젊은 날의 라프 시몬스(Raf Simons) 역시 록 밴드(핑크 플로이드, 크래프트워크, 소닉 유스, 블랙 플래그) 배지를 자신의 옷에 붙이고 다녔다. 1995년 론칭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통해 라프는 지난 19년 동안 컨템퍼러리 맨즈웨어의 얼굴(기존의 트렌드)을 바꿔놓으며 디자이너로서 성공했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안했던, 그리고 반항심이 가득했던 10대 시절의 추억으로부터 힌트를 얻곤 한다. 그에게 옷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니까. 본디 ‘새로운 영역에 들어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가 LA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와 함께 일하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일반적인 패션 콜라보레이션과는 다르다. 2014 F/W 라프 시몬스 컬렉션은 라프와 스털링이 가지고 있는 펑크에 대한 두 사람의 사랑 표현이다. 이것은 콜라주된 옷감들과 패치들을 통해서 완성되었고, 기존의 사고방식과 규칙의 무시였다. 지금 라프는 앤트워프를 떠나 파리에서 그의 다섯 번째 디올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다. 밴드의 포스터를 모으던 소년이 자기 경력의 정점에 선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 여전히 한계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라프는 과연 엘리트의 위치에서 초기의 자기 자신과 같은 아웃사이더로 남을 수 있을까?

I
나는 내가 아웃사이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따금 그렇게 보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는 보다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나는 잘못된 때에 잘못된 곳에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대부분의 10대가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겠지만.

II
라프 시몬스 2014 F/W 컬렉션에 아웃사이더 이론을 적용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런 걸 해 보고 싶다’는 감정이 일었을 뿐이었다. 사실 스털링이 콜라보레이션 제의에 “예스!”라고 대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만약 그가 하우저 앤드 워스(Hauser & Wirth) 갤러리 같은 곳에서 쇼를 하자고 했다면 나는 그와의 작업을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의 필드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까. 나는 주도권을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의 일하는 방식은 나름 독특하다. 나와 스털링과의 콜라보레이션은, 내 생각에는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라프 시몬스라는 내가 만든 브랜드를 넘어 우리 브랜드 이야기고,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은 ‘우리’가 함께 결정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이번 일은 각자의 시스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스털링에게 접근한 이유는 그가 매우 강한 사람이고 세상에 대해 독특한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알고 지낸 지는 9년쯤 됐고 우리는 그 세월 동안 환상적인 대화들을 많이 나눴었다. 우리의 콜라보레이션이 잘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나와 스털링 모두 한발 더 나아가야 할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만들든 간에 두 사람 모두에게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는 내게 전혀 의미가 없어요.” 나와 스털링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그러다 보니 마치 패션 시스템이 지닌 태도와 사고방식, 미학에서 한참 벗어나 마치 첫 컬렉션을 하던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 거나 다름없기도 했거니와 우리 두 사람 모두 이런 식으로 일하기를 절절히 갈망해왔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라프 시몬스 브랜드의 DNA, 즉 초기 모습으로의 회귀라고도 생각했고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III
예전엔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거니까 이걸 해야겠어.’ 하지만 10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어느새 시스템에 묶이게 되고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창작 활동에 스며든다. 솔직히 이 부분은 인정한다. 왜냐하면 지난 7년여 동안 ‘이건 패션 시스템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라서 더는 이렇게 못 할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작업을 하면서 나와 스털링 모두 그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래야 할 것 같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것이 코트 한 벌에 75가지의 천이 콜라주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그냥 밀어붙이는 거다. IV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스템을 끌어안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일이겠지만, 시스템 안에서 내 관점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고 싶었다. 내 안에는 그런 이중성이 있다.

디올은 지난 40년간 존재해 온 역사적인 브랜드고, 라프 시몬스는 내가 1990년대 중반부터 확립해온 것이다. 한쪽은 남자고, 한 쪽은 여자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다. 하나는 컨셉추얼하고, 나머지 하나는 그다지 컨셉추얼하지 않다. 나는 언제나 이런 대조를 희망해왔다. 이러한 대조는 사고를 하게 만들고 질문을 하게 만든다. 도전일 수 있겠지만 심리적으로 매우 상쾌한 상태를 만들어준다. 파리에서 일주일 동안 디올을 위해 일하다가 다시 앤트워프로 돌아와 내 브랜드를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종종 이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그 순간 진정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단 하나의 두려움이 있다면, 그리고 디올에서의 내 포지션에 대해 강하게 경계하는 점이 있다면 그건 내가 디자이너로서 고립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이건 이래야만 맞다’라고 말하는 독불장군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그건 패션의 정의가 아니다. 패션이란 액션과 리액션이 함께해야만 의미가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나의 포지션은 단지 창작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존재감을 지니는 아티스트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입지 않을 옷을 만든다는 건 내겐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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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이따금 시스템이란 것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 자신이 그것의 일부분인 만큼, 과연 시스템의 한계는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런 문제를 분석한다는 건 굉장히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한 일이다. 사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무수한 질문들만 안고 있을 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리라. 그리고 이는 단지 패션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VI
라프 시몬스는 언제나 당대의 세대에 관한, 그 세대가 서로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에 관한 브랜드였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내가 그 나이 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훨씬 더 늦은 나이에 생각하게 됐던)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나의 세대에는(아마도 나는 아니고 내 주변 사람들이 그랬다는 얘기지만)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특정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어떨 땐 부정적이기도, 긍정적이기도, 혹은 그저 무엇인가에 반응한 의견일 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나름대로의 독특함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신비함에 끌렸었다. 무언가 드러나지 않아 찾아내기 힘든 그런 것들 말이다.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마음속에서 거품처럼 부풀어올라 굉장히 로맨틱한 것이 되고는 했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어떤 음악을 제일 좋아하는지? 요즘은 뭘 듣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면 (농담이 아니라) 열 명 중 여덟 명 정도가 “전부 다요. 다 좋아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요”라고 대답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이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길 바라는 건 아니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가 궁금할 따름이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사람들이 더 이상 독특해지길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내가 젊었을 땐 독특한 것이 미덕이었으니까). 재미있게도 최근에 나는 윌리 반더페르와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클럽에 가면 오직 한 가지 장르와 한 가지 드레스 코드, 한 가지 스타일의 춤이 있을 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벨기에의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 신을 지배했던 뉴 비트 같은. 그게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이었다. 억지로 거기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대신 재즈 클럽을 가면 되니까. 요즘은 페스티벌 같은 데 가면 모든 것이 거기 다 있다. 사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그런 것들이 그립다. 우린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하지만 바로 거기서 내 질문이 나온다. 젊은 세대들이 그들이 가져보지도 못한 것들을 그리워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그런 세대가 아닐 뿐이며, 그래서 나는 그들을 비판하는 나이 든 세대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그들은 우리의 옛날 모습처럼 될 수 없다. 우린 그 점을 깨달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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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그것의 일부분인 만큼, 과연 시스템의 한계는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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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만약 당신이 패션 디자이너라면 ‘사람들이 왜 옷을 사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옷을 왜 사는지 알고 있으니까. 나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서 옷을 산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하이엔드 의상을 사는가’ 하는 질문은 내게 언제나 매혹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이엔드 의상이라는 건 확실히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니까. 내가 열여덟 살 때는 헬무트 랭이나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에 관심이 있었다. 그때는 뭐든지 직접 찾아내야만 했다. 아마도 TV 쇼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걸 보거나 <The Face> 같은 매거진에서 조그만 사진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그걸 팔 만한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 것에 대해 아주 작은 관심만 가져도 그걸 찾아서 헤맬 필요조차 없다. 이미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게 널려 있을 테니 말이다.

옷을 사고 싶다고? 요즘은 부티크까지 갈 필요조차 없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입어보고 잘 안 맞으면 돌려보내면 그만(웃음)! 너무나 쉽게 A부터 Z까지 다 찾아볼 수 있으니 오히려 상상력이 고갈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는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본다. 오늘날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은 모든 것을 전부 노출시킨다. 또 사회가 너무 돈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깊이와 독특함을 추구한다거나 분석적으로 사고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게 포르노건 옷이건 음악이건 간에 말이다. 나는 여전히 <네 번째 성: 사춘기의 극단(The Fourth Sex: Adolescent Extremes)>(프란체스코 보나미와 함께했던 그의 2003년 전시회이자 책 제목)의 이면에 깔린 이론이 유효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일단은 유사한 점도 보이고 다른 점도 보인다고만 해 두자.

 

TEXT ISABELLA BURLEY
PHOTOGRAPHER BEN TOMS
STYLING ROBBIE SPE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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