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russia with love

예브게니 코즐로프는 러시아의 앤디 워홀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파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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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선동적인 아티스트 예브게니 코즐로프(Evgenij Kozlov)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관음증 환자가 된 것 같다. (E-E)로도 알려져 있는 코즐로프는 더러운 행위나 사회적인 통념을 깨는 것들, 그리고 섹스 뒤에 감춰진 욕망의 모습을 거친 선으로 묘사한다. 그는 20세기 중엽부터 말까지 러시아에서 지내며 작업해왔지만 공산주의 국가의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통념을 깨고, 아주 위험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펜과 잉크로 유쾌하게 새겼다. 그의 눈은 환상적인 난교의 현장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윙크를 하며 ‘안 될 게 뭐 있어?’라고 묻는다. 올해로 59세가 됐으며 큐레이터인 아내, 하넬로어 포보와 함께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코즐로프는 자신은 태어나기 전부터 아티스트가 될 운명이라고 말했다. 세계대전 직후 러시아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그는 아티스트로 성공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신화를 쓰길 좋아했다. (E-E)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E-E)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E-E = mc³’라는 공식을 의미한다. “두 개의 E는 레닌그라드 아트 신에서 활동할 무렵의 이름이었어요. M은 마이크를 의미하고 C는 창의성을 나타내죠. 그리고 세제곱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뜻합니다.”

코즐로프는 그림을 그릴 때 환상과 현실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대상의 특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주로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다. 초기 작품집 <The Leningrad Album>(1967~73)은 그의 10대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킹을 신은 여성들이 침대 위에 몸을 굽히고 오럴 섹스를 하는 모습을 담았다. 지루하고 억압된 세상 속 10대들이 어떤 성적인 사건이라도 일어나주길 기다리며 군침을 흘리는 모습을 상징한다.종교를 비롯해 섹스와 성에 대해 보수적인 소비에트 사회에서 이는 마치 포르노 사이트와 같은 것이었다. 큐레이터 마시 밀리아노 지오니는 2011년 열렸던 <Ostalgia> 전시 중 작품 ‘The Leningrad Album’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작품은 일종의 욕망의 기계에요. 바라보고 있으면 14세나 15세쯤 된 소년의 판타지가 생각나죠. 동시에 대단히 아름다운 백과사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는 단순히 섹스에 대한 욕망뿐만 아니라 전 우주적인 욕망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코즐로프는 10대 소년의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다가 러시아에서 유명한 ‘뉴 아티스츠’의 두 번째 멤버로 영입됐다. 이 그룹은 철학자이자 아티스트인 티무르 노비코프가레닌그라드의 전통적인 예술학교에 대한 반발로써 만들었다. 그들은 전설적인 스튜디오 루스코이 폴리에서 시끌벅적한 파티를 열곤 했는데, 참석자는 주로 국제적인 저널리스트들과 예술가들, 작가들이었다. 뉴 아티스츠의 멤버들은 형식적이고 학구적인 아트 신을 멀리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교육 체계를 만들려고 애썼다. 격동의 1980년대를 거치며 멤버들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과는 반대로 끼리끼리 모여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레닌그라드 중심부에 있는 교회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티무르 노비코프의 ASSA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기도 하고 공연과 파티, 상영회를 계속 가지며 영향력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코즐로프의 작품이 마치 앤디 워홀의 작품처럼 대량으로 찍혀 나가기 시작하면서 뉴 아티스츠 그룹은 체제를 뒤흔드는 워홀과 그가 낳은 스타들과 비견되곤 했다. 하지만 그러한 비교가 항상 적절한 것만은 아니었다. 루스코이 폴리에 모인 아티스트들이 주목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아트 신이 아니라 서로의 예술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뉴 아티스츠 그룹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강조하며 운을 뗐다. “그 모임에서 저는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그것들은 나중엔 포토 콜라주 형태의 작품이나 제 그림의 모델이 되었죠. 결과적으로 제 작품 중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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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라 루스코이 폴리는 정규 예술 교육을 받은 적 없던 그에게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어주었다. “젊었을 땐 친구들과 함께 삶에 대한 자세를 공유하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특히 저처럼 예술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아티스트들에겐 더욱 그랬죠. 학위라는 것은 감옥에 가지 않고 일을 하기 위해서나 필요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예요. 그런데 가족들은 제가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고, 주말에만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요했죠.”

다행히도 코즐로프는 부모님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학창 시절 내내 그의 열정을 이어나갔다. 자신이 이뤘던 가장 위대한 업적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20세기 초반에 등장해서 지금껏 확장하고 있는 현대 예술의 한 주류인 ‘카오스 아트’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정의를 인용하면, 카오스 아트는 미리 생각해둔 계획 없이 그저 끌리는 대로 만드는 예술 작품이다. 그다지 놀라울 것 없는 정의지만, 그 속에서 동시대 예술을 처음부터 실패작이라 칭하며 무턱대고 존중하지 않는 불굴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아티스트들은 본인을 반영하거나 책략이 녹아 있는 이미지를 생산해요. 이는 사생아를 낳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인디 밴드 푸시 라이엇이 뉴스에 나오며 러시아 내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서방과의 정치적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서 코즐로프의 작품이 다시 한 번 조명을 받게 됐다. 그가 1988년에 여러 매체를 혼합하여 만들어낸 ‘USSR’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두 초강대국의 관계를 거울에 비친 임산부의 모습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코즐로프 역시 이 작품이 현재에 다시금 의미를 갖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특히 ‘레닌스카야 에로티카(Leninskaya Erotika)’라는 작품에서 인정받는 리더였던 레닌은 미국의 핀업 걸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치적인 분노로 눈이 멀어본 적 없고 작품에 긍정적인가능성을 담는다는 코즐로프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단 한 번도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시리즈를 만든 적 없어요. 저는 세계가 긍정적으로 흘러가도록 도와주는 작품을 만들죠.”

1990년 코즐로프는 아내와 결혼 후 함께 살기 위해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4년 뒤 그곳에서 루스코이 폴리2를 차렸다. 아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스튜디오에서 그는 자신의 이상을 최대한 실현했다. 이후 2008년에 스튜디오 문을 닫았고, 이제는 집 가까운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본인의 작품을 다시 보여주는 목적 이외엔 전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요즘은 예술이 곧 직업이에요. 그 경계가 뚜렷해졌죠. 저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제 모든 작품들을 안전한 어딘가에, 이를테면 스위스 은행 같은 곳에 맡겨두는 거예요. 한 400년쯤 흐른 뒤에 다시 꺼내놓으면 사람들이 제가 했던 것을 이해해주고, 긍정적으로 감상해줄 것만 같아요.”

 

TEXT SUSANNA DAVIES-CR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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