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rnal Boy

Eternal Boy
수트는 에이치 에스 에이치(Heich Es Heich), 스니커즈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박훈은 울끈불끈 거칠게 생겼지만, 소년의 감성으로 낭만을 누릴 줄 안다.

 

 

박훈은 예명이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형의 이름이다. “첫 오디션을 볼 때 불현듯 생각났어요. ‘어차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테니까, 형 이름으로 활동하면 가족들이 즐거웠던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거다’싶었죠. 그래서 박훈이라는 이름에 먹칠하지 않으려 노력해요.”그가 연기를 반드시 잘해야만 하는 이유다. 물론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탄광촌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작 6만원을 들고 상경했다. “서울은 제게 기회의 땅이었거든요. 서울에서 버틸 수 있도록 온갖 아르바이트는 뭐든 다 했어요. 용역, 웨이터, 대리 운전 같은 밤일은 거의 섭렵했죠. 찜질방에서도 살았고요.”정작 연기할 시간도 없이 노동을 한 셈이니, 연기 말고도 잘하는 게 참 많을 것 같아 물었다. 그는 ‘연기 말고 잘하는 거’라는 문장을 다섯 번이나 소리 내어 곱씹고는 서서히 입을 뗐다. “연기도 뭐 그리 잘하는 게 아니라, 잘하고 싶은 건데요. (여기까지 말하고는 또 1분이 넘도록 망설이다) 농담 잘해요. 뭐든 장난치고 즐거운 게 좋거든요. 오늘 같은 촬영도 사실 제게는 장난인 거죠. 강원도 촌놈이 패션 잡지 화보를 찍다니요. 이야, 이거 진짜 웃긴 일이에요. 그죠?”

그의 서울 생활 적응기는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의 노래 ‘치킨런’과 닮았다. 한마디로 ‘찌질’하다. 실제로 이 노래를 부른 요절한 청춘의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의 주연도 맡았다. “배달도 했어요. 짜장면 내밀면서, 살짝 열린 남의 집 문틈으로 영화제 수상 소감이 나오면 ‘나도 저 자리에 서야지’싶었어요.”데뷔가 늦긴 했다. “영화관을 스무 살에 처음으로 갔어요. 그전엔 비디오테이프로 홍콩 영화만 봤었죠. 청주에 있는 허름한 극장인데, 아마 지금 가서 보면 굉장히 작을 거예요. 큰 DVD방 정도 되려나요? 그래도 제 눈에는 엄청 커 보였어요. 그렇게 처음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쉬리>였어요. 너무 놀랐죠. ‘화면에 사람이 저렇게 크게 나오다니!’, ‘이런 장르가 있다니!’하고요. 영화가 끝난 뒤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배우들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듣고 연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블록버스터 영화로 꿈을 가졌는데 단출한 무대 공연을 한다. “뮤지컬은 저와 어울리지 않는 장르라고 생각했었어요. ‘아 무슨, 연기하다가 노래하고 이상해’이러면서요.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를 보고 펑펑 운 거예요. 그리고 바로 다음 주에 그 작품 오디션이 뜨더라고요. 무조건 해야 한다는 신호처럼요. 그리고 제 데뷔작이 됐죠.”

확신을 가지니 확실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꾸준히 캐스팅 콜을 받아 작년 한 해만 작품을 여덟 개나 했다. 참고로, 보통의 배우들은 1년에 서너 작품을 한다. 무대 공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 “연극배우라고 소개하면 자동적으로 ‘어우, 힘들겠네’라는 탄식, 가난하고 배고프다는 인식이 따라와요. 이런 시선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어요. 연극은 마치,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같이 쓰는 셈이에요. 배우와 관객이 같은 시공을 공유하죠. 그 자체가 숭고하다고 봐요. 굉장히 의미 있고 값진 일이에요. 지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요.”연극에 대한 선입견을 속상해할 때는 목소리가 매우 커졌다. 벌써 8년 차다. “배우 지망생일 때 밤에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작품의 캐릭터 표현이 풍부해졌어요. 가장 큰 드라마는 역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죠. 그들의 감성을 필요로 해요. 저는 밤일했던 시간들이 지금 배우로서 큰 자산으로 남았어요.”

주목받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개의치 않는 걸 보면 태생부터 남들보다 조금 느린 듯싶다. 그래도, 이토록 느린 그에게 빠른 게 하나 있다. “어릴 적에 육상을 했어요. 형, ‘진짜 박훈’이 공부를 정말 잘했거든요. 저도 100점 맞고 전교 1등 했는데 빛을 못 받았어요. 가엾게도. 우리 집에서는 당연한 거였죠. 사랑받고 싶어서 다른 걸 찾았나 봐요. 운동으로 메달을 따니까 부모님이 칭찬을 해줬어요. 막무가내로 달리면 칭찬을 받고 생명력이 생겼죠. 그래서 실제로 유도를 하는 <유도소년>이 힘들지만, 몸 쓰는 게 어렵진 않아요.”굵은 목소리로 신이 나서 칭찬이 곧 생명이었다 말하는 입꼬리가 씰룩인다. “미용실에서 보는 잡지 속의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순간에 가까이 왔네요.”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잔뜩 해주면 뭐든 해낼 것만 같은 소년의 순박함이 우쭐함과 더해졌다. <유도소년>에서 박훈이 연기하는 고등학생, 경찬이의 해맑음도 보인다.

“이걸 누가 볼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어쩌면 아무것도 가진 거 없이 부딪히면서 저처럼 ‘나도 여기 나가야지’생각하는 친구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음…잘 왔으면 좋겠어요. 끝까지. 저 같은 사람도 나오잖아요.”박훈은 얼마 전 번듯한 소속사도 생겼다. 그래서 무대를 너머 TV와 스크린까지 활동 반경을 넓힐 예정이다. 그러니까 이 느리지만 빠른 서른다섯 살 그에게 응원을 좀 해주어야겠다. 혹시 아나, 어느 날 갑자기 청룡영화상을 받게 되어 자신을 닮은 짜장면 배달부로부터 부러움을 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DITOR 오다혜

PHOTOGRAPHER 황혜정

MAKEUP 김지혜

STYLING 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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