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vists

패션의 순환 속도가 빨라졌다! 디지털 세상 때문이다. 순환이 빨라지니 정기 시즌에서 간절기 까지 컬렉션의 숫자도 늘어나고 양도 방대해졌다. 여기서 잠깐, 숨을 고르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는 이 컬렉션 유산을 어떻게 ‘아카이브’ 할 것이냐는 꽤나 전통적이지만 알고 보면 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질문! 답을 찾아가다 런던에 있는 아키비스트들과 맞닥뜨렸다. 아카이브를 재구성하는 큐레이터와 아카이브를 재생산하는 브랜드를 통해 아카이브의 역할과 중요성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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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c Hom Trunk Archive

 

Text In hae 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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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앞두고 V&A가 구입한, 사진가이자 맥퀸의 친구 앤의 사진들은 맥퀸 쇼의 생생한 현장을 담고 있다. ‘Unfallen Angels’, 2009. ⓒ Ann Ray,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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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Featherweight’, 2008. ⓒ Ann Ray,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또 있었을까. 2016년은 시작도 안
했는데, 봄여름 컬렉션은 벌써 지나간 얘기고 리조트 컬렉션 소식으로 인터넷이 떠들썩하다. 몇 달 뒤면 바로 가을겨울 컬렉션 트렌드가
캣워크 위에 펼쳐질 것이고, 또다시 리조트 컬렉션을 거치면 1년이 휙 지나가버린다.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공포스러운 이 스케줄이 빅 브랜드를 이끄는 중견 디자이너들에게도 막대한 부담감을 준다는 사실은 최근 연이어 발표된 중진 디자이너들의 브랜드 퇴장 소식만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팀을 둘로 나눠 시스템을 가동하고 스케줄을 세우니 컬렉션은 돌아가지만, 창의적인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장의 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하물며 신인 디자이너들은 어떨까.

런던 패션 역사를 뒤바꾼 신인을 꼽는다면, 그 주인공은 단연 몇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혜성같이 등장한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이다. 전 세계 최대 장식 미술 컬렉션을 보유 중인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 일명 V&A)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 <알렉산더 맥퀸: 새비지 뷰티(Alexander McQueen: Savage Beauty)>는 뉴욕과 런던 그리고 파리까지 세 도시를 오가며 열렸고,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전시라는 기록과 함께 패션 전시의 새로운 장을 연 주역이기도 하다. 이번 여름, 런던 전시가 끝나기 직전까지도 연일 만원 사례를 이어 결국 박물관 측은 개관 후 처음으로 야간 개장을 감행해야 할 정도로 대중은 전시에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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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초까지 이어진 알렉산더 맥퀸 회고전을 통해 그의 아카이브 작품들이 공개됐다.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여러 개의 갤러리를 이어 맥퀸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풀어낸 전시는 박물관 패션 큐레이터 팀과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팀, 그리고 패션계 많은 조력자들의 손길이 모여 관객들에게 수준 높은 경험을 선사했다. 전시의 초점은 철저히 ‘스토리텔링’이었다. “전시를 위해 공수된 오브제들의 규모도 대단했고, 극적인 무대 연출과 오디오 비주얼 요소들을 사용한 기획은 패션 전시의 수준과 기대치를 한껏 끌어 올리는 결과를 가져왔죠.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는 독특하게 접근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20세기와 컨템퍼러리 패션을 담당하고 있는 V&A 큐레이터 소넷 스탠필(Sonnet Stanfill)이 전시 과정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앞서가는 런던이지만, 패션 아카이브의 역사는 의외로 길지 않다. 소넷은 “박물관의 첫 패션 큐레이터는 1957년에 고용되었고, 1970년대부터 컬렉션을 구입하고 전시를 기획하기
시작했어요. 전 세계에서 이런 작업을 시작한 최초의 박물관들 중 하나이기도 하죠” 라고 말을 이었다. 박물관은 1852년에 오픈했지만, 소넷의 말대로 본격적인 패션 아카이브 구축은 1970년대부터이고, 지금부터 2년 전에야 비로소 박물관 외부에 패션 아카이브를 모두 모아놓은 클로스워커스 센터(Clothworker’s Centre)를 오픈했다. 이곳에는 5000년간의 패션 역사가 아카이브로 보관되어 있고, 패션 전문가들에게만 관람이 허용되던 이 아카이브가 이젠 대중에게도 공개되고 있다(단, 무료 예약제로 운영 중이니 사전 예약 필수).

“초기에는 19세기 컬렉션 중에서도 고유의 텍스타일 디자인이 부각되는 제품들, 예를 들어 기독교 성직자들의 예복이나 중요한 태피스트리 위주로 수집했어요. 지금은 큐레이터 팀이 나서서 디자인에 영향을 주거나 디자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이슈들을 주시하며 컬렉션을 구입해요. 최근에 새로 더해진 컬렉션 중에서 미드햄 키르초프
(Meadham Kirchhoff)의 룩과 발렌티노(Valentino)의 쿠튀르 드레스가 아주 흥미롭고,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수집(Rapid Response Collecting)’이라는 전략 아래 방글라데시 공장에서 제조된 프라이마크(Primark)의 카고 팬츠도 구입했어요.” 소넷이 말하는 프라이마크 카고 팬츠는 2년 전 1100명의 사상자를 낸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Rana Plaza) 공장이 붕괴된 사건과 연계된 제품이다. 이 사건은 패스트 패션의 이면을 대중에게 드러낸 중요한 사건으로, 저가 정책은 물론 열악한 작업 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미드햄 키르초프는 안타깝게도 몇 시즌 전 브랜드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뒤로 물러난 디자이너로, 고전과 모던을 재해석한 그의 장식적인 요소들과 실루엣은 박물관을 통해 역사를 이어가게 되었다. V&A는 특히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수집’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시의적절하게 조명하고 글로벌화, 팝 문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변화, 인구학, 기술, 규정 혹은 법에 대해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질문을 유발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진행 중이다.

패션계를 둘러싼 이슈들과 트렌드를 기준으로 수집된 아카이브는 패션 큐레이터 팀의 시각으로 재구성된다. 소넷은 전시를 큐레이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방문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일관된 서술, 그와 연결 고리를 갖는 컬렉션의 구성, 그리고 그것을 비주얼로 임팩트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에요”라고 말했다.
자신들만의 새로운 패션 역사를 서술해야 하는 신인 디자이너들을 향해 그녀는 “역사적으로 디자인 하우스의 초창기 작품들은 늘 흥미롭기 마련이니 치열한 이 기간의 기록들을 잘 보관해놓으세요”라고 조언한다. 아카이브는 공간과 비용 그리고 시간이라는 제약에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듀오 디자이너 브랜드 프린(Preen)은 2014 영국 패션 어워즈(British Fashion Awards)에서 성숙한 디자이너 브랜(Established Designer Award) 상을 수상한 20년 차 베테랑이다. 그들은 작년 이커머스 론칭과 함께 온라인 판매를 위한 단독 제품을 고민하다 시작한 ‘프린 아키비스트 프로젝트(Preen Acrhivist Project)’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가까운 지인들과 친구들이 지나간 시즌의 옷을 구매할 수 없냐고 자주 문의해요. 고객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끝에 이를 론칭하기로 결심했죠.” 브랜드의 오른팔인 저스틴 손턴(Justin Thornton)이 이 프로젝트를 관리 중인 매니저 엠마 찰스(Emma Charles)를 소개하며 말문을 열었다. 프린은 브랜드 론칭 이후 모든 컬렉션을 아카이브 중이라고 한다. 제품은 하나하나 시즌을 표기한 박스에 담아 보관 중이다.

프린 아키비스트 프로젝트를 위해 저스틴과 테아 브레가치(Thea Bregazzi) 부부는 등식(Equation)을 만들기로 했다. 등식의 중심에는 인물을 두기로 결정했다. “이 아름다운 여인들을 모두 스튜디오에 초대한 후 아카이브를 공개하고 함께 파고들었어요. 그녀들은 모든 컬렉션을 열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스타일, 자수, 프린트 그리고 실루엣들을 선택했죠.” 테아가 말을 이었다. 모든 요소들을 모은 듀오는 그들만을 위한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아카이브 제품의 오리지널 영감으로 돌아가 재작업했고 이를 등식으로 완성해 소개했다. ‘영감 001+영감 002+선택된 제품 x 아키비스트 = 최후의 프린 룩’ 참여한 여인들은 모두 브랜드와 끈끈한 인연을 맺은 이후 오랫동안 응원하고 지지하는 인물들로 지금까지 이커머스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루스 채프먼(Ruth Chapman), 매치스패션닷컴 회장, 야스민 수엘(Yasmin Sewell), 패셔니스타이자 최근 스타일닷컴 패션 디렉터로 임명된 리사 암스트롱(Lisa Armstrong), <텔레그래프> 일간지 패션 디렉터, 그리고 사라 해리스(Sarah Harris), 영국 <보그> 패션 · 피처 디렉터 등 9명 외에 현재 2명과 함께 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프린 아키비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현재에 맞게 재생산하는 작업을 완벽하게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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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 아키비스트 프로젝트로 완성된 룩을 입은 야스민 수엘을 저스틴이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거울 속에 포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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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해리스와 콜라보레이션한 아키비스트 드레스를 모델이 피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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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암스트롱이 입은 드레스를 디자이너 저스틴이 피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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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Man Repeller의 운영자 리안드라 메딘(Leandra Medine)이 프린 아키비스트 프로젝트를 위해 프린과 콜라보레이션한 제품을 입은 모습.있는 모습이 거울 속에 포착되었다.

총 11명이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은 모두 사진으로 정리해 아카이브하기도 했다. 또 그들의 컨템퍼러리 브랜드인 프린 라인(Preen Line)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 컬렉션을 재조명하다 보니 시즌별로 유사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건 록 밴드 너바나의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그런지, 모로코의 무어리시(Moorish) 타일과 빅토리아풍 (Victoriana) 등이에요.” 듀오 디자이너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론칭 이후의 컬렉션을 그들을 지지하는 패션계 주역들과 함께 돌아볼 수 있어 특별했다고 회상하며 브랜드의 주요 키워드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얘기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매 시즌 더 크고 방대한 아카이브로 확장되겠죠. 아카이브를 이어갈 생각이에요.” 저스틴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20년 전 브랜드를 시작한 초창기 그 열정을 그대로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하나하나 간직하고 보관한 아카이브는 먼지가 뽀얗게 앉기는커녕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화려한 제2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패션 전시와 이를 수반한 서적들의 판매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캣워크 행렬도 점점 더 불타오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지금, 새로운 비전을 품고 선구자의 길을 걸었던 빅 하우스도, 신선한 자극으로 일어서는 신인 디자이너도 모두 아카이브를 통해 패션 역사와 유산을 이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 V&A와 프린을 넘어서 더 많은 아카이브들이 보존되고, 또 아키비스트를 통해 운영되어야 더 빨리 회전하는 패션 궤도가 그 아름다운 흐름을 이어가지 않을까. 게다가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도 패션은 영원불멸하다고 믿는다. 왜냐면 우리는 늘 이 안에서 아름다운 미학을 탐구하고 좇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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