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손보미

손보미는 지금 가장 재기 발랄한 소설을 쓴다. 그 손보미가 12월의 문 앞에 섰다.

소설 쓰는 손보미
셔츠 스타일의 롱 원피스는 자인 송(Jain Song), 롱 카디건은 나인(Nain), 페이턴트 레더 소재 앵클부츠는 로베르 끌레제리 (Robert Clergerie).

 

Text Yunn Seo Uan Photography Min Hong Ahn Fashion Seok Bin Seo

 

소설 쓰는 손보미
판초 스타일 베스트는 클럽 모나코 (Club Monaco), 블라우스는 나인.

 

어느덧 겨울이 왔다. 겨울은 글 쓰기에 좋은 계절인가?
나는 집에서는 작업을 잘 못하는 편인데, 겨울은 일단 집에서 나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기 때문에 내겐 더 어려운 계절인 것 같다.

2년 전 기사에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그해의 책으로 선정한 적이 있다. 그게 벌써 2년이다. 2년 동안 뭔가 달라진 점이 있나?
책을 내기 이전에는 ‘책이 없는 작가’였는데 이제 ‘책을 한 권 낸 작가’가 되었다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다.

<그들에게 린디합을>은 단편집이었다. 글을 쓸 때 작품의 길이를 정해놓는가?
지금 장편으로 연재하고 있는 ‘디어 랄프 로렌’ 이라는 작품은 원래 단편으로 발표한 소설 이다. 쓰다 보니 이것저것 넣고 싶은 장면이 많은데 분량의 한계를 느껴서 결국 다 잘라내야 했다. 나는 원래 복잡한 이야기를 짧은 분량에 잘 우겨 넣는 편인데, 단편으로 쓰던 당시 ‘디어 랄프 로렌’은 이상하게도 그게 좀 힘들었다. 그래서 쓰는 도중에 이걸 나중에 장편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초보 작가라 처음부터 감이 딱 오지는 않는다.

‘디어 랄프 로렌’은 지금 문학동네에 연재 중인데, 언제까지 연재되는가?
2015년 봄부터 2016년 봄까지 네 번 연재한다. 이번에 세 번째 연재분을 넘겼다.

우리가 패션 잡지 아닌가. 당신은 패션을 즐기는 편인가? 이건 실례되는 말일 수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문인들의 패션이라는 게, 그게 사실 ….
내 신체적 결점을 패션으로 커버하는 것에 관심이 좀 있다. 팔뚝이 굵으면 어느 정도 길이의 소매가 적당한지, 허리가 기니까 스커트는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 거 같다든지, 뭐 그런 정도. 유행하는 아이템도 적당히 알고, 좋아하는 브랜드도 적당히 있다. 아마 내 나이 또래의 직장 여성들과 비슷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있다.

그럼, 왜 랄프 로렌을 소재로 삼았나?
아, 내 나름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대학교 2~3학년 때쯤, 정말로 랄프 로렌이 엄청나게 유행했었다. 대학생 사이에서는 랄프 로렌 티셔츠에 면바지 입는 게 정말 유행이었다.

음, 나도 그 시절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랄프 로렌과 버버리가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막내 동생이 여고의 2학년이었는데 ,엄마한테 학교에 입고 갈 랄프 로렌 더플코트를 사달라고 몇 날 며칠을 징징거리는 걸 봤다. 내가 졸업한 학교라서 아는데, 그 학교는 겨울 코트도 정해져 있는 데다가 다른 코트를 입으면 벌을 받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이제 아무도 교복 코트를 안 입는다고, 랄프 로렌 더플 코트가 없으면 창피해서 학교에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좀 충격이었다. “아무도
학교 코트를 입지 않는다”는 말도, “랄프 로렌 코트가 없으면 창피하다”는 말도. 뭔가 나와 다른 세대를 목격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동생은 랄프 로렌 코트를 입었나? 
엄마가 사주었다. 아주 개인적인감상이지만, 지금은 랄프 로렌이 그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스파 브랜드처럼 유행을 재빠르게 활용하는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굉장히 고급 브랜드의 노선을 걷는 것도 아니고, 이 시대의 브랜드는 더더군다나 아닌 것 같은. 뭔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듯한. 물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랄프 로렌을 좋아하고 입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 역시 여전히 랄프 로렌의 어떤 부분을 좋아한다. 거기서부터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

‘내 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랄프 로렌이 되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조금 풀렸다.
어떤 여고생이 랄프 로렌 컬렉션을 만드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단순하게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문장을 기억해주다니, 좀 신기하고 재미있다. 좋다.

소설의 주인공은 랄프 로렌과 전혀 상관없는 물리학자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흥미롭지만, 지금 말해줄 수는 없겠지?
이번 연재분부터는 이야기의 중심이 다른 사람들로 확 넘어간다. 미국에 홀로 남겨진 ‘종수’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다.
당신의 작품은, 어딘가 늘 밝고 상쾌하다. 천연덕스럽게 눙치는 기분이다.

친구들은 당신을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항상 ‘유머 감각을 잃으면 안 돼’라고 되뇐다. 얼마 전에 친구랑 춘천에 놀러 갔는데, 기차역에서 만난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깔깔거렸다. 그런 순간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유머 감각’ 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내 안에서 언제라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가까운친구들은 내가 아주 시니컬하고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는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당신의 작품에는 부르주아적인 수식어도 있는 것으로 안다. 동의하는 지점인가?
아마도 내 소설 속 인물들이 대부분 중산층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쓴 모든 소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그런 면이 있다. 나는 사람들의 욕망이 부딪히고 어긋나는 지점에 관심이 있다. 손보미 소설은 부르주아적이다, 라는 말 속에 어떠한 가치 판단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그런 인물들을 가지고 소설을 잘 썼느냐, 못 썼느냐의 문제겠지. 여하튼 잘 쓰고 싶다.

올해 문학계는 유독 이슈가 많았다. 당신에게는 어떤 한 해였나?
올해 초에 젊은 작가들이 모여 한 문예 잡지에서 대담을 할 때 지금 문단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아주 잠깐 나온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때 우리들의 얼굴에 떠오르던 표정이나 나지막한 한숨이 종종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올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올 때도 그랬다. 많은 생각을 했고, 정리가 잘되지 않았고, 그런 만큼 꽤 무력감에 시달린 한 해였다.

오늘 당신과 만난 이유는, 2016년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을지 묻기 위해서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청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성숙한 사람도 아니고, 착한 사람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니다. 때로는 무척 게으르고, 때로는 자본주의적 욕망에 이끌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순간에는 나 자신이 너무 싫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 말고 나 자신에게 말이다. 이제껏 후회되는 일들을 돌이켜보면 내가 나 자신을 속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대부분이다.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같긴
한데, 여하튼 현재의 나에게는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마르케스는 작품을 쓰는 일을 목수가 의자를 만드는 일에 비유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든다. 문학이 우리 시대에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면, 그건 목수가 만든 의자가 하는 역할 정도이다. 목수가 만든 의자가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다. 목수가 공을 들여 아주 훌륭한 의자를 만든다면, 그 의자를 구입한 우리는 편하게 거기 앉아 밥도 먹고, TV도 보고, 휴식도 취하고, 새로운 내일을 각오할 수도 있다.

아름다운 비유다. 그럼 내년에도 우리는 손보미가 만든 의자에 앉을 수 있겠군.
우리는 의자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지 모르지만, 그래도 의자는 항상 거기에서 제 몫을 한다. 이런 비유는, 거의 항상 실패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실패를 무릅쓰고 문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훌륭한 작품은 거기에서 항상 제 몫을 한다. 일상을 지킬 힘을 주고, 새로운 내일을 각오할 힘을 부여한다. 멋진 의자처럼 말이다.

‘디어 랄프 로렌’의 다음 편을 기다리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세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빌 헤이스의 <불면증과의 동침>,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 마지막 하나는 토마스 만의 단편들. 예전에는 지루하다고 느꼈는데 작년에 토마스 만의 단편들을 다시 읽으면서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의 마지막 날,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특정한 날에 대한 특별한 감흥이 없다. 심지어 내 생일조차도 별로. 2015년, 2016년의 마지막 날도 그냥 일상적으로 지나갈 것 같다. 내
일상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길 바라지만 , 그렇지 못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오늘의 할 일은 있다. 인터뷰가 끝나면 조이스 캐롤 오츠의 <여자라는 종족>을 마저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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