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혜가 사랑한 가방

가방에 대한 수다라면 늘 시간이 모자란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액세서리 사업부, 석정혜 상무의 이야기다. 그래서 책이 나왔다.

Fashion Bag
석정혜가 사랑한 가방

Text Ruby Kim
Photography Yeong Jun Kim

 

 

 

대학 졸업 후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하며 처음 가방을 만들기 시작해, 퇴사 후 자신의 이름을 딴 OEM 잡화 회사 석 제이(Seok J)를 설립하고 탄탄대로를 달리던 중 IMF 때 부도를 맞아 자신이 가진 모든 가방을 처분해야 할 정도로 인생의 위기를 맞는다.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직접 만든 가방을 메고 다닌 것이 청담동에 입소문이 나면서 ‘특별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 결국 쿠론이라는 대중적인 잡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가방 디자이너 석정혜다. 최근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그녀가 가방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이 직업인 자신의 삶에 중요한 포인트가 된 기념비적인 가방을 고르고 추렸다. 그리고 그 가방을 통해 울고 웃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책 <디자이너가 사랑한 백> 출간을 축하한다. 마스터피스에 얽힌 히스토리와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함께 실어 딱딱하지 않게 풀어낸 점이 흥미롭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가방을 다 섭렵했더라.
책에 실리지 않은 가방들도 꽤 많다. 어려서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에르메스, 샤넬, 생 로랑, 크리스찬 디올, 구찌, 프라다 등 수없이 많은 가방을 접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훗날 가방 디자이너가 된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다. 다양한 종류와 디자인의 가방을 직접 들어보면서 디자이너로서 디자인 철학을 정립하는 데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으니 말이다.
지난 6년간 몸담았던 쿠론을 떠나 신세계인터내셔날 액세서리 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 않나? 물론 자식 같은 브랜드인 쿠론을 내려놓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민도 두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내가 원래 현실에 안주하는 생활을 못 견디는 타입이다(웃음). 솔직히 앞으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박수 칠 때 떠난다고, 마음은 아프지만 이쯤에서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주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돼서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전혀! 오히려 하루하루 신난다.
지금껏 25년이 넘는 세월을 가방 디자이너로 살아왔다. 이제 석정혜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통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너무 오래 일한 것 같다(웃음). 지금까지 그냥 가방이 좋아서 한 거지 유명해져야겠다거나 대단한 디자이너가 돼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한 건 아니다. 쿠론도, 직접 만든 가방을 메고 다니다가 반응이 좋아서 보따리 장사처럼 시작한 것이 어마어마하게 히트를 쳤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디자이너로 살면서 요즘 제일 좋은 건, 내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았으면 디자인 실에 있는 어린 친구들과 어떻게 말을 섞고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사는지를 알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 제일 행복하다.
저서에서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만든 발렌시아 백을 디자인적으로 가장 큰 충격과 자극을 준 가방으로 꼽았다. 요즘 눈길 가는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가브리엘라 허스트. 근래에 뭔가를 보고 예뻐서 사진을 찍어본 일이 없는데, 보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가방을 변형시키는 방식이 탁월하다.

평소 가방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나?
예쁜 게 가장 기본이다. 나는 내가 들지 않을 가방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게 철칙이다. 그리고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 실용적인 기능은 당연하고. 안 들고 다니는 가방을 뭐 하러 만드나?
아티스트와 비즈니스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아가는 것 같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것, 그것을 판매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
사실 그게 제일 힘들다. 나는 파인 아트를 하는 예술가가 아니고 상업 디자이너다.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는 게 상당히 어려운데, 나의 경우는 디자인만 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직접 회사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어 비즈니스적인 판단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데 재능과 노력 중 어느 것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하나?
재능과 노력이 적절히 믹스되는 게 좋겠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결국, 노력이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도 결국 피나는 노력은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항상 마음의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자만하는 순간 도태될 수 있다.
맞는 말 같다. 요즘 소비자들은 굉장히 영리하다. 옛날처럼 ‘잇 백’ 시대도 끝났고,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유행에 민감하면서 싫증도 잘 낸다. 디자이너로서 시장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경기는 항상 어렵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고 25년간 단 한 번도 경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포화 시장에서도 새로운 브랜드는 계속해서 태어난다. 재미있지 않나? 분명히 앞으로도 돌파구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국 럭셔리의 끝은 평범함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편해서 즐길 수 있는 것 말이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풀어가려고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가방 디자이너 석정혜에게 가방은 어떤 의미인가?
가방은 분명 나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존재다. 그렇지만 가방은 가방이다. 일단 물건을 담는 도구다. 에코 백이든, 명품 백이든 나에게 가방은 가방일 뿐 그 이상의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매장에서 만나는 손님들한테도 항상 가방을 집에 모시지 말고 막 메고 다니라고 말한다(웃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가방을 사용하는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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