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의 거울

사내는 거울 속 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Art+Culture 카이
카이의 거울
티셔츠는 그렉 로렌(Greg Lauren), 니트 소재의 재킷은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목에 연출한 스카프와 레이어드한 반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Text Ji Woong Choi

Fashion Gee Eun

Photography Yong Bin Choi

 

 

 

카이의 거울
소매 끝이 둥글게 말려 있는 빈티지한 티셔츠는 그렉 로렌(Greg Lauren), 벌키한 롱 카디건은 J.W. 앤더슨(J.W. Anderson), 바지는 톰 포드(Tom Ford).
카이의 거울
칼라 부분이 주름진 블라우스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레드 컬러의 톱은 디올(Dior), 부츠는 생 로랑(Saint Laurent), 디스트로이드 진 팬츠는 플랙(Plac).

카이의이름앞에붙는몇가지수식어를굳이나열하면 이렇다. ‘팝페라 가수’, ‘크로스오버 뮤지션’, ‘뮤지컬 배우’, ‘서울대학교 성악과 박사 과정’.
수요일 저녁, 카이가 스튜디오 문을 밀고 들어와 악수를 건네기까지수십초만에‘오늘근사한배우한명을알게 되었구나’ 무릎을 가볍게 내려치며 확신했다. 티 없는 소년의 얼굴로 신나게 말하다가, 이따금 매서운 눈빛을 스치듯 보였다. 눈을 피하는 법이 없었고, 주저하는 듯했지만 좋은 발성으로 자존감과 자립에 관한 확신의 말을 눌러 담았다. 요즘의 손쉬운 ‘겸손’ 따위는 끼어들 틈도 없었다.

카이는 9월에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듣겠노라 했다. 그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찾아 듣고 어쩌면 왈칵 무너져내릴 뻔했다.

공연 중인데 일주일간 라디오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 에게>의 스페셜 DJ를 했다.

라디오라는 매체를 특별히 좋아한다. 재작년 까지6년정도DJ를했다.내삶에있어서클래식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클래식 음악 방송이고 평소에 애청자였으니 즐겁게 했다.

완연한 배우의 얼굴이 보인다.

사실 얼마 전 소속사 대표님에게 같은 말을 들었다.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아마이제 마냥 어리지만은 않으니까 삶의 무게가 얼굴에 묻어나는 게아닐까.나자신에대해인지하고판단하는방법을알 게된것같다.몇년전만해도내가진짜원하는게뭔지 몰랐는데 최근 들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확신이 조금씩 생기니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존감이라 고하면될까?나자신을향한믿음같은게원래거의없 었다.

자존감이 낮았다는 말인가? 의외다.

맞다. 지금도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무던히 노력하는 중이다. 스스로 존재하게 하는 노력. 그게 필요 하고꼭찾아야한다는점을크게인식하고있다.진짜노 력하고 있다.

초여름에 연극 <레드> 무대에 올랐다. 그때 카이의 얼굴 이 전과 달라 보이더라.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결심한 듯) 감히 지금 까지해온작품 중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말하고싶다.여 러가지이유가있지만방금말한것처럼나를찾는과정 이, 연극 <레드>의 과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레드 >는마크로스코라는화가가죽기5~6년전이야기를바 탕으로 한다. 예술가의 고민과 번뇌, 갈등을 철학적인 관 점과늙음과젊음등수많은인식안에서접근하는데모 든 대사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렸다. 카이라는 배 우이자 가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작품이다.

<레드>는 카이에게 무척 의미 있는 작품인가 보다.

맞다.조금더명확한나를발견하게한작품 이다. ‘넌 처음으로 존재했다’라는 짧고 강력한 대사가 있 는데,그대사가마치존재하지않던나자신을존재하게 만들어준것같다.

<레드>의마지막공연5일후<잭더리퍼>의막이올랐 다. <잭 더 리퍼>는 어떤 작품인가?

재밌는 작품이다. 뮤지컬을 보러 오시는 분들의 가장 큰 목적은 재미,감동,공감 같은 즐거움을 찾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잭더리퍼>는그감정을전부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작품을 선택할 때 얼마나 아름 다운 이야기와 음악인지,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다니엘이라는 역할은 그런 면에서 나를 유혹하기 좋 은 요소였다.

수요일 저녁에는 인터뷰와 촬영을 하고 있다. 목요일 이 시간에는<잭더리퍼>의다니엘이되어있을것이다.새 삼스럽지만 무대에 선다는 일에 관해 묻고 싶다.

원래 인터뷰를 좋아했다. 누군가와 교감하고 교류하며내이야기를하는게좋았다.그런데요즘은좀 부담스럽다. 인터뷰라는 게 꼭 지난밤에 쓴 일기장 같더 라.지나고보면후회스러운말도많고,생각이바뀐부분 도적지않다.

다만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겠다. 무대에 오르는 기쁨은 무 척 크지만, 부담감도 상당하다. 대한민국의 관객은 좋은 의미로 날카롭고 엄격하다. 그 채찍질이 배우를 성장하 게하지만,보고싶은것이명확한것같다.그런관객앞 에서 연기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더 단단해지려 노력 한다.다른사람의시선에너무신경쓰지않는지혜혹은 마음의넓이가이제조금생긴것같다.

좋은 배우란 뭘까?

내일이면 후회할 일기장이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의생각은좋은배우란스스로존재할수있는사람 인것같다.자신이어떤존재인지명확히알고있는것, 믿음. 그게 좋은 배우의 요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음악가카이에대해말하려한다.왜정통성악가가 되지 않았나?

클래식은오랜시간인류와함께한최고의음 악이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 위대한 자연과도 같은 클 래식음악앞에숨쉴수없는부담을느꼈다.생명의위 협,나를놓칠것같은기분이들었다.

그건 경외심인가, 답답함인가?

둘다.대학교2학년때슈베르트의가곡을나 름대로 해석해서 불렀다가 담당 교수님께 크게 혼난 적 이 있다. 슈베르트가 엄격하게 정리해놓은 원칙도 중요하 지만, 나는 지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학문이 아니라 예술을 하 고싶었던것같다.

그래도 카이의 뿌리는 여전히 ‘클래식’ 아닌가?

맞다. 자유로운 클래식. 뮤지컬을 하든 노래를 부르든 내 마음속에는 항상 클래식이 있다.

요즘의 9월은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다. 9월에 어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좋을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의 같은 타이밍에)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그 는 열정적이지만 서늘하고, 차분한 듯하지만 뜨거운 사랑 을음악에담아낸작곡가다.

음반은안낼건가?

아니다. 올 하반기에 음반이 나온다. 사실 큰 그림은 거의 그려진 상태다.

아직 그 이상은 비밀인가?

<쇼미더머니> 보나? 쿠시와 작업하게 되었다.

쿠시? 아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원래 힙합 음악을 좋아한다. 그들의 마인드 를 좋아한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쇼미더머니>를 보면 서도끼라는래퍼가말하는걸보고존경심을갖게되었 다.어려움을극복하고자신만이할수있는유일한음악 을 완성해내고 있다는 점, 그 노력을 지금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이 멋있더라. 자신감이 있다는 거니까. 쿠시를 알게된건몇년전인데어느날그의작업실에서쿠시 가만든의외의트랙을듣고깜짝놀랐다.아무것도없는 상태에서 둘이 만나 피아노를 두드리고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완성한 곡이다. 훅이 강한, 감성적이고 클래식 한 부분이 있는 음악이다.

이제 지드래곤, 태양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

나는 그 친구들의 팬이다. 공연에도 자주 간 다. 지용이와 태양이는 월드 스타잖나.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친구들도 다 똑같더라. 살면서 많은 고민과 한계를 느끼면서 살더라. 무대에서의 자신감과 솔직함을 보면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활동하는 영역도 다르지만 존경스럽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생각은 있나?

최근 들어 관심이 있는 분야다. 연기라는 게 굉장히매력적인것같다.앞서말한연극<레드>를통해 깨달았다.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도전해보고 싶다. 우연히 어떤 감독님과 이야기 나눌 일이 있었는데, “웃으 면서 사람 죽일 얼굴이다”라는 말을 하더라. 섬뜩하긴 하 지만어쩌면내안에그런본능이있을지도모른다.그런 감정들을 사람들 앞에 꺼내놓는 데 익숙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것같다.타인의시선을신경쓰며살았다는말이 기도하고,나자신에게솔직하지못한삶을살았다는후 회와 반성이기도 하다.

적은 나이는 아닌데 여전히 ‘나’와 ‘정체성’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는 것 같다.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 싶다. 그래도 발전된 부분이 있다면 초점이 ‘나’에 맞춰졌다는 것이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보는 나’를 신경 쓰고 살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다. 온전한 나를 생각하며산다는건그나마발전한일인것같다.

서울대학교 성악과 박사 과정이다. 학업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있나?

오늘도 수강 신청을 하고 왔다. 굳이 공부를 계속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라는 걸 느끼긴 하는데, 떠나 온길이너무멀다.그리고무언가배우고알아가는즐거 움은 굉장하다.

카이의 지난 일기장을 마지막으로 들춰보겠다. “뭐든 10 년은해봐야알수있다”고데뷔6년차에말했다.2년이 더 지났다.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겸손해 보이려고 하 는말이아니라나는아직신인이라는걸알고있다.아직 멀었다. 나 자신이 바로 서지 못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 다. 무대 위에서도, 가정에서도, 또 누군가의 관계에서도 내가나로존재하는방법을찾고싶다.오늘우리가나눈 이야기가 딱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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