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적합

물병자리, 토끼띠, 스물아홉. 히가시데 마사히로(東出昌大).

어떤 적합
의상은 모두 발렌시아가(Balenciaga).

Text Ji Woong Choi
Fashion Bebe Kim
Photography Chikashi Suzuki

 

 

 

 

어떤 적합
의상과 슈즈는 모두 로에베(Loewe).
어떤 적합
셔츠와 타이는 모두 토가(Toga).

201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에는 ‘키리시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엔드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키리시마가 왜,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대신 그의 부재를 둘러싼 개개인의 다른 얼굴을 여러 시점에서 비출 뿐이다. 얼핏 흔한 청춘 영화의 외양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청춘 영화의 공식과 환상이 깨지는 지점에서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새롭게 시발한다. 키리시마가 부재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얼굴은 키쿠치 히로키 역을 맡은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다. 비밀을 간직한 듯 흔들리는 얼굴로 석양 아래 서 있던 그의 얼굴은 능숙하다고 하기에는 아직 모자람이 있었지만 단단해 보였다.
몇 년이 지나 올가을 동경의 거리에서 만난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그 자신에게 적합한 얼굴을 찾았다는 듯, 잘 익은 배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당신의 배우 데뷔작인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매우 인상적인 출발이었다.
모델 활동을 멈추고 처음 도전한 연기가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였다. 연기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촬영 현장에 갔는데, ‘그저 열심히 하자, 도망치지만 말자’는 생각뿐이었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의 한국판 포스터에는 당신의 얼굴이 크게 들어가 있었고, 흥행 성적도 좋았다. 이 사실을 알고 있나?
포스터는 본 적이 있는데 반응이 좋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나와 매니저 모두 그 사실을 듣고 놀랐다(웃음).
유명 모델로서의 삶 대신 신인 배우로 새롭게 출발하는 게 아쉽진 않았나?
모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에 관심이 생겼다.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고, 그렇다면 당연히 모델 일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델과 배우는 완전히 다른 직업이니까.
배우로 전향한 이유가 궁금하다. 혹시 더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를 찍을 때만 해도 배우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다.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하지만 함께 작업한 배우나 제작진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 훌륭한 직업이라는 생각에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당신에게 중요한 작품으로 보인다.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스포니치 그랑프리 신인상과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 배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고,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을 것 같은데?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는 모든 출연자의 연기가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내가 대표로 상을 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사실 이 영화를 찍을 때는 내가 연기를 한다는 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감독의 디렉션대로 움직이기만 했던 것 같다. 5년 정도가 흘렀고 이제야 연기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
최근 당신은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인 이시이 다카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들과의 작업은 어떤 경험이었나?
이시이 다카시 감독은 만화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모든 장면의 콘티를 직접 그린다. 작은 부분까지 콘티를 그려서 원하는 바를 스태프들에게 정확히 요구하는데 정작 배우에게는 콘티를 보여주지 않는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콘티보다는 본인의 머릿속에서 컷 분할과 배우의 움직임을 정해놓는다. 구로사와 감독은 “영화는 허구의 세계니까 배우의 개인적인 감정은 담지 않는다”라고 말하더라. 시나리오상의 배역 이름도 성(姓)만 있었는데, 그런 대본은 처음 받아봐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감독은 배역의 이름이나 사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천재 같은 구석이 있는 분이다.
차기작으로 <데스노트 Light up the NEW world>를 골랐다. 이 시리즈는 한국에도 많은 팬이 있고, 내년 초에 개봉이 예정되었다.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데스노트> 시리즈의 원작자인 오바 츠구미가 직접 각본을 쓴 작품이다. 영화 <데스노트>를 개봉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어서 출연을 결정했다.
함께 출연한 이케마츠 소스케와의 호흡은 어땠나?
이케마츠 소스케와 함께하는 장면이 아주 많았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묘사하는 치열한 장면이 대부분이어서 때때로 현장 분위기가 달아오르거나 예민한 순간도 있어 항상 긴장감이 감돌았다. 새로운 자극과 좋은 경험이 되었다. 덕분에 실감 나는 장면이 연출된 것 같다.
당신의 영화 중 개인적으로 궁금한 영화가 있다. 도요시마 케이스케 감독의 <매니악 히어로>가 그것인데, 당신은 망가지는 연기도 서슴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모델 출신 배우가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진짜 배우가 되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던데.
맞다. 점점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이미지 따위 전혀 신경 안 쓴다(웃음).
가족과 애완견과 함께 있는 파파라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유명인임에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소박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자유’란 중요한 가치인가?
맞다. 유명인이라고 폼 잡는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20대 한 시절 인기만 누리다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50대, 60대가 되었을 때 제대로 된 어른이길 바라고, 좋은 평가를 받는 배우로 남고 싶다. 훌륭한 어른과 배우가 되기 위해 자유와 일상을 잘 지켜내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보나 마나 당신에게 ‘가족’과 ‘사랑’은 절대적인 존재일 것 같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지만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하고 싶지는 않다. 배우라는 직업은 배역을 연구할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지방 촬영을 가면 며칠씩 집을 떠나야 하니까 가족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가족의 배려와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말 고맙다.
애완견에 대한 애정도 각별해 보이던데.
결혼 전 내가 키우던 믹스 견 한 마리와 아내가 키우던 시바 견 한 마리인데, 우리의 결혼으로 녀석들도 가족이 됐다. 나의 애완견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녀석이다. 두 마리 다 다섯 살이고 6개월 터울이다. 진짜 귀엽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젊은 배우치고 빨리 결혼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스물여덟 살은 결혼하기에 이른 나이는 아니다. 아시아에서는 아이돌과 배우의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젊은 연예인이 연애를 하지 않거나 비공개 연애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을 생각했을 때 자유롭게 연애를 하거나 가정을 꾸리고 책임지는 경험들이 개인으로든 배우로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눈앞의 인기와 이미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에 주저하는 건 어리석지 않나. 사랑하는 사람과 적절한 시기에 결혼한 것뿐이다.
결혼을 통해 연기의 깊이가 더해졌다거나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 같나?
결혼 전과 후 연기의 깊이나 스타일이 눈에 띄게 변한 게 있는지 아직 실감 나진 않는다. 다만 최근 아이가 태어나고 뉴스나 영화에서 어린아이가 희생되는 소식을 접하면 유난히 마음이 아프다. 언젠가 ‘아버지’ 역할을 한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뻔한 질문이긴 하지만 아내와 아이 중 누가 더 소중한가?
하나의 슈크림 빵을 2개로 쪼갠 다음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물어보는 것과 같다.
역시 뻔한 질문이지만 이런 게 궁금하긴 하다. 한국 배우나 감독 중 좋아하는 이름이 있나?
배우 송강호. 김기덕, 봉준호, 박찬욱, 양익준 감독 등 너무 많다. 한국 영화는 공부 삼아 많이 보는 편이다. <린다 린다 린다>의 배우 배두나와 작업해보고 싶다.
한국 팬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데, <데스노트 Light up the NEW world>의 한국 개봉에 맞춰 당신을 초대하면 응할 생각이 있나?
당연하다. 너무너무 가고 싶다!

 

 

Styling Ryota Yamada Hair & Makeup Go Utsusi (SIGNO) Coordination Tomoko Og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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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Swiss, Typ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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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에디터 최지웅과 패션 에디터 이종현이 글로 쓰는 같은 이슈 다른 내용, 이른바 '최대리'. 편집장은 매달 이들의 한판 승부를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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