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미지’라는 거 내가 만든 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나’일지도 모른다.”

엄정화는, 가수다. 영원토록.

Art+Culture 엄정화
“그 ‘이미지’라는 거 내가 만든 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나’일지도 모른다.”
블랙 컬러 브라 톱과 브리프는 모두 라펠라(La Perla), 페이턴트 재킷은 유니클로(Uniqlo), 스틸레토 힐은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Text Ji Woong Choi
Fashion Suk Won Kim
Photography Yeong Jun Kim

“그 ‘이미지’라는 거 내가 만든 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나’일지도 모른다.”
주얼 장식의 다크 블루 드레스는 21드페이(21Defaye), 라이더 재킷은 마쥬(Maje), 레드 컬러 스틸레토 힐은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그 ‘이미지’라는 거 내가 만든 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나’일지도 모른다.”
체인 디테일의 블랙 퍼 코트는 알쉬미스트(R.shemiste).

엄정화를 만나러 가는 길 톰 포드의 향수 ‘토바코 바닐’을 맥박이 뛰는 곳에 얹었다. 너른 스튜디오에 들었을 때 그는 나보다 먼저 구석의 소파에 옆으로 기대 있었다. 눈썹은 하얗게 탈색했고 입술은 붉었다. 겨울, 핏기 없는 서울의 밤을 돌아다니며 엄정화는 카메라를 보고 솟았다. 괴롭기는커녕 좋아 보였다.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감독 톰 포드의 <Single Man>에 흘렀던 ‘Becoming George’를 흥얼거리면서 그렇게 했다. 엄정화에게서 근사한 향이 풍겼다. 톰 포드의 날카로운 향이 어디에 묻히는 일은 드물 텐데 코트에는 숫제 엄정화의 알싸한 향만 배어 남았다. 그 향수는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새 앨범의 제목은 비밀이 아니다. <The Cloud Dream of the Nine>. 엄정화가 돌아왔다.

 

처음 본 사이에 뜬금없지만 최근 다녀온 여행지가 궁금하다. 그곳은 아마 여름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맞다. 두 달 전에 하와이에 다녀왔다.

엄정화를 만나면 무슨 말로 시작할까 고민을 했다. “나는 엄정화를 드물게 훌륭한 보컬리스트라고 생각한다. 8집 앨범 <Self Control>은 지금도 아껴 듣는다”라는 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와 고맙다. 나도 8집 앨범을 좋아한다. 무모한 도전이긴 했지만,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내가 성량이 좋은 가수도 아니고 퍼포먼스가 주가 되는 무대를 꾸미니 노래를 부를 기회도 없었다. 나 자신도 그런 자리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던 것 같다.
2004년에 발표된 8집 <Self Control>은 소위 ‘엄정화표’ 노래와 다른 앨범이었다. 차라리 전혀 상관이 없없다. 어떤 마음을 먹었던 건지, 이제 와 다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앨범은 쫄딱 망했다. 최저의 판매를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 음악이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하지만 엄정화에게는 돌파구였다. 시대는 변하는데 언제까지 같은 스타일로 사랑받을 수 있겠냐는 생각을 했다. 절실한 욕심이 있었다. 변화하고 싶었다.

8집이 성공하지 못해서 두려웠나? 엄정화라면 자기가 믿고 좋아하는 것을 밀어붙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8집은 사람들이 ‘엄정화’를 떠올리면 생각하는 대중적인 노래와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음악 두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9집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앨범에 참여했다. 하지만 역시 성공적이진 못했다. 나는 변화하고 싶었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그사이 대중과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정화라는 가수가 취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앨범 자체가 주는 만족감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도 중요했다. 예전의엄정화로 돌아간다기보다 동시대에 활동하는 대중적인
프로듀서의 곡을 통해 다시 ‘업스테이지’로 가고 싶어졌다. 그게 <D.I.S.C.O>다.

엄정화에게 덧씌워진 이미지가 있다. 거들고 싶지 않다. 지겹지 않나?
‘섹시’ 그런 거? 지겹지는 않다. 내가 오래 이 일을 했지 않나. 그 시간 동안 생긴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바꾸고 싶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이미지’라는 거 내가 만든 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나’일지도 모른다.

피로감이 묻어나는 얼굴이다.
피로하긴 하지. 진짜 듣기 싫어하는 말이 따로 있긴 하다.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 오늘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그 딱딱한 의자 너무 불편해 보인다. 여기 소파가 넓은데 그냥 나란히 앉아서 편하게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고맙다. 소파에 앉으니 훨씬 편하다. 그리고 더 묻지는 않겠다. 가수 엄정화는 할 거 다 해보고, 입을 거 다 입어보지 않았나? 아직 하고 싶은 게 있나? 새 앨범에 관해 들려달라.
안 해본 거 있다. 청순한 이미지(웃음)?
그걸 한다고?
사실은 ‘뻥’이다(웃으며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패션에 끝이 어디 있나. 시간이 지나도 소중히 간직
하는 옷이 있고, 거기에 때가 되면 새로운 옷을 더해서 입는 거지. 하고 싶은 건 넘친다.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아직 식지 않았다. 새 앨범은 정규 앨범이다. 음원 시장이 어렵지 않나. 이 시점에 정규 앨범이 의미가있을까? 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성격이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의 가요계는 시시하지 않나?
시시하다. 다 똑같으니까. 그런데 그건 예전부터 그랬다. 가수 엄정화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싶었고, 지금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건 당장 하고 싶었다. 준비 기간이 길긴 했지만 결국은 해내서 기쁘다.
새 앨범에 윤상의 곡이 수록된다고 들었다. 그의 노래를부르는 엄정화는 엄청나다. 당신이 부른 ‘사랑이란’을 들을 때는 매번 울음을 꾹 참는다.
그 노래는 나도 울면서 불렀다. 이번에 (윤)상이 오빠와 작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오빠가 문자를 보냈다. ‘네 목소리가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숨소리마저 좋다.’ 새삼스러운 그 말이 좋았다.
엄정화에게는 정원영도 있다.
‘봄’(웃음)!?
맞다. 8집의 수록 곡 ‘봄’은 역설적으로 추운 겨울이면 늘
달고 사는 노래다.
너무 설렌다, 그 말(한동안 침묵). 윤상 오빠,(정)원영 오빠, (정)재형이, (김)동률이, (이)적이, (유)희열이를 동경한다.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는왜 저들과 같은 음악을 직접 만들지 못할까 하는 부러움과 콤플렉스를 느낀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하는 게 너무행복하다. ‘봄’을 녹음한 날은 꿈 같다. 밤 8시인가 9시인가 스튜디오에 모였다. (이)적이가 놀러 와서 족발과 소주를 시켰다. (정)재일이는 소주 몇 잔을 마시고 기타를쳤고, 나는 녹음 부스에서 노래를 불렀다. 나눠 부르지 않고 다섯 번인가 통째로 부른 노래 중 하나가 앨범에 실린거다. 그날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남았다. 심지어 나는 소주를 마시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 참 소중한 노래인데, 당신의 말을 듣고 나니더해졌다. 정원영과 함께한 ‘천천히… 천천히’도 있다.
‘봄’이라는 노래를 알아줘서 너무 기분이 좋다. 고맙다. (정)원영 오빠의 ‘천천히…천천히’는 내가 갑
상선 수술 후 오랫동안 소리를 내지 못하던 시절에 부른 노래다. 노래가 너무 하고 싶었다. 마포의 어느 스튜디오였는데, 천천히 오빠 뒤를 따라가면서 부른 노래다. 아직숨을 내쉬기가 힘들었다. 목을 다친 후 처음 부른 노래라… 불렀다고 하기도 그러네. 그냥 말한 거니까.
말할 줄 아는 보컬이 귀한 거다.
고맙다. 솔직히 ‘천천히…천천히’를 알고 있을줄은 몰랐다.
자주 외롭고 쓸쓸한 편인가?
다들 그렇지 않나? 외롭고 쓸쓸할 때가 분명있다. 그런 감정이 다가오는 걸 싫어하진 않는다. 어떤 것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슬프게 쓸쓸하다.
사람?
사람, 그리고 시간. 언제쯤부터 내가 메인이 되는 시간에서 좀 벗어났다. 나 그거 알고 있다. 처음에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참 외롭고 쓸쓸하더라.
사랑에 빠진 일은 오래전인가?
좀 됐다.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 위에 올라섰을 때의 기분이 궁금하다.
서핑을 말하는 건가? 설명하기 어렵다. 죽을만큼 패들링을 해서 바다로 나아간다. 진짜 멀고 힘들다.이쪽을 보면 내가 온 길이 보이고 저쪽을 보면 끝도 없는 파도가 보이는데, ‘인생’이라는 단어가 느껴지더라. 처음에는 눈물이 날 뻔했다. 함께 서핑 하는 친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에서 위안을 받았다. “똑같은 파도는없어! 파도를 놓쳐도 돼. 언젠가는 또 와.” 특별한 말이 아닌데 괜히 벅차올랐다. 나는 원래 뉴욕 같은 곳에서 시끄럽게 춤추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사람이다. 서핑을
시작하고 여유롭게 사는 삶이 훨씬 건강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가치관이 바뀐 거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중요하게 생각하던 내게는 신선하고 커다란 사건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향수 뭐 쓰나? 너무 좋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이거? 원래 내 향기인데(웃음)?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엄정화에게 지난 8집과 9집 앨범은 아픈 손가락인가?
전혀! 그 앨범이 아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올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겨울밤이다. 이 인터뷰가 끝나면 촬영을 하러 나간다. 괴롭지 않길 바란다. 당신을 위해 핫팩을 잔뜩 사뒀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 그런데 핫팩을 붙일 만한공간이 있는 옷은 하나도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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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베를린, 리옹, 뉴욕으로 떠난 네 사람. 요즘 따라 마냥 더 부러운 이들의 작정이 있거나 없이 이 땅을 떠나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