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의 서른 즈음

“달이 되고 싶다. 별보다는 달이 좋다. 별은 지는데 달은 지지 않고 항상 떠 있다.”

정해인의 서른 즈음
테일러드 재킷은 생 로랑 by 글리터 무드(Saint Laurent by Glitter Mood),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Text Ji Woong Choi
Fashion Seul Gi Yun
Photography Yong Gyun Zoo

 

정해인의 서른 즈음
스타디움 점퍼는 코치(Coach), 티셔츠는 알렉산더 왕 by 글리터 무드(Alexander Wang by Glitter Mood), 아이보리 컬러의 니트 톱은 아방 뚜아 by 아티지(Avant Toi by Artage). 슬랙스는 디바인 라운드(Divine Round).

정해인은 내내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착하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존감과 열등감은 늘 함께 가는 것 같다는 말을 했던가. 눈을 피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얼굴이 붉어지는 건 내 쪽이었다. 그 눈동자를 아직도 생각한다.

 
초면에 급작스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길든 짧든 분량에 상관없이 눈과 마음에 걸리는 배우들이 있다. 내게는 정해인이 그랬다.
좋은 말 고맙다. 나도 오늘이 긴장되고 떨린다. 두근거린다고 해야 하나. 아직 이런 식의 인터뷰나 촬영이 얼떨떨할 때가 많다. 어제도 영화 시사회에 갔다가 뒤풀이에서 스크린 속 배우들과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한참 신기하더라.
지난해 여름부터 당신이 궁금했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한 살씩 더 먹고 보게 되니 반갑다.
올해 30세가 되었다. 원래 나이에 따르는 역할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긴 한데, 기분이 묘하긴 한 것 같다. 이중적일지도 모르는데, 신경을 안 쓴다고는 하지만 나이 먹는 걸 실감하기도 하고 그러는 중이다. 30세가 돼서 처음으로 하는 인터뷰고 첫 화보 촬영이니 내게도 의미가 남다른 날이다.

 
나이에 관한 이야기는 나도 싫지만 해인 씨가 먼저 꺼냈으니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요즘 서른은 입신양명해서 출세해야 하는 나이처럼 느껴진다. 그런 조급함이 있나?
혼자 일어나야 할 것 같고 자리를 잡아서 증명해 보여야 할 것 같고, 무언가 결과를 보여줘야 할 나이처럼 느껴지는 건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론 그 틀 안에 나를 집어넣기보다 내가 새로운 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선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텐
데 그게 쉽지는 않다. 다행히 배우는 다른 직종에 비해 나이에 관한 편견이나 부담이 덜한 것 같긴 하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열등감은 좀 있는 편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점을 가진 사람을 봤을 때 갈증에가까운 열등감을 느끼는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애쓰다 보면 좋은 약으로 작용할 거라 믿는다.

 
내가 예상한 정해인은 조심스럽고, 방어적이고, 자신을 드러낼 줄 모를 거로 생각했다. 초반부터 자신의 나이에 관한 고민과 열등감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준비한 착한질문은 다 버려야겠다. 자존감은 높은 편인가?
이른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니고, 성격도 나서고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연기하면서 성격이 변한 것 같다. 해보니까 자존감이 낮아서는 이 일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촬영 현장은 진짜 전쟁터 같은데, 단단히 준비하지 않거나 연기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나 같은 경우, 부족함을 제대로 알
고 반성하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통해 자존감과 열등감을 함께 가져간다.

 
하지 않아도 될 고백을 또 하자면, 내게는 드라마 <삼총사>와 <블러드>의 정해인은 각인되지 않았다. 내가 해인씨를 처음 본 건 <그래, 그런 거야>를 통해서다.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알려진 김수현 작가의, 54부작이라는 긴 호흡, 젊은 배우에게 매력적일 리 없는 가족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
우선 ‘선택’이라는 표현은 정정하고 싶다. 나는감히 이 드라마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나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할 판이다. 연기를잘해서 그 기회가 생긴 건 아니고 나의 에너지와 극 중‘세준’의 에너지가 잘 맞았던 게 아닐까 한다. 선택한 게아니라 선택을 받은 거다.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주제파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얼마나 부족한 배우인지 알았다. 많은 젊은 배우들이 김수현 선생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나의 모든 장단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감추거나 포장하는 게 불가능하더라. 어머니 역할로 함께 출연한 김해숙 선생님이 큰 도움을 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

 
<그래, 그런 거야>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동시대적인 캐릭터는 해인 씨가 연기한 세준이 아닐까 싶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여행 작가를 꿈꾸는 세준은 사랑 앞에 모든 걸내걸 줄도 안다. 해인 씨는 어떤가?
꿈은 높고 그 꿈을 이루려 아등바등 노력하지만, 본인이 하기에 최선이었지 현실적으론 그렇지 않은인물이었다. 그래서 애착이 가고 기억에도 많이 남는다.나도 세준처럼 사랑에 모든 걸 걸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는 못 할 것 같다. 현실과 타협하고 계산하는 내 모습에
반성하는 일이 종종 있다. 어느 순간부터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 것 같다.

 
배우로 사는 일은 어떤가? 스타가 되기 전까지 많은 고비가 있을 것 같은데.
음, 우선 스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달, 달이 되고 싶다. 별보다는 달이 좋다. 별은 지는데 달은 지지 않고 항상 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모양이 계속 바뀌는달이 좋다.

 
개인적으로 동경하고 흥미롭고 또 부럽기도 한 사람이,반듯하고 착하게 ‘잘’ 자란 사람이다. 눈을 보면 대충 감이 오는데 어쩌면 당신이 그런 사람일 것 같다. 가정의 경제적 수준과 상관 있기도 하고 전혀 무관한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내가 정해인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이인격을 형성하는 데 배제될 순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래,그런 거야>에 나온 것 같은 대가족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고 지금도 각별하게 기억에 남는다. 나의 성격이나 습성에 큰 영향과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가정 환경이 중요하
다고 믿는다. 학창 시절, 유년 시절의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어른이 된 후에 만나는 친구도 중요하다.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사람처럼 보인다.
사랑 정말 많이 받았다. 이제 내가 베풀어야 한다(웃음).
<불야성>이 끝나갈 무렵 <도깨비>에 야구복을 입고 등장할 때 반갑더라. 긴 시간 준비하고 노력한 자신의 작품보다 스치듯 출연한 모습이 화제가 됐다. 서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도깨비>는 작가님과 감독님이 나를 좋게 기억해주셔서 출연할 수 있었다. 한참 <불야성>을 찍고 있을때였는데 운 좋게 시간이 맞아서 촬영했다. <도깨비>가워낙 이슈가 되었으니 그 모습을 많이 기억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고 또 고맙지만 <불야성>의 ‘탁’이에게는 미안하다. 서운함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그래도 괜찮다. 만약 그런 일에 배가 아프고 짜증이 난다면 그건 조급하다는 뜻일 텐데, 조급함이 없는 편이다. 천천히 내 속도로 나아가면 된다.

 
오늘 촬영을 되게 재미있어한 것처럼 보이는데 어땠나? 자기 얼굴을 신기하게 구경하고 서 있던데?
신선했다. 찍으면서 힐링이 됐다. 결과물이 마음에 드니까 힘이 나더라고. 그간 시도해보지 않았던 표정을 많이 해봤는데 결과도 괜찮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재미있었다.
잘생기고 예쁘고 연기 잘하는 배우는 많다. 배우는 ‘눈빛’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인이라는 배우에게는 눈빛이 있다고 믿는다. 잃거나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맙다. 이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건강하게 꾸준히. 반짝 말고. 그러기 위해서 우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거다. 선한 에너지를 뿜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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