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

영화에서 발견한 재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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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ng Hyun Lee

가을의 전설

재킷은 특별하다. 재킷을 걸친다는 것은 티셔츠 위에 무엇 하나를 더 입는 개념 이상의 것이다. 영화 <킹스맨>에서 콜린 퍼스는 “슈트는 신사의 갑옷이다”라고 말했다. 콜린 퍼스는 갑옷을 슈트로 한정지었지만 슈트를 넘어 재킷 자체가 하나의 갑옷이다. 개개인에 따라 다른 어깨 라인과 허리 라인의 실루엣을 올바르게 잡아주고, 티셔츠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소재의 질감과 스티치, 지퍼 또는 단추, 포켓, 칼라, 커프스 등 재킷을 완성하는 요소들 그리고 특유의 부피감은 마치 하나의 갑옷처럼 신체의 단점을 보완하고 더욱더 입체적으로 꾸며준다. 이처럼 여타 의상과 비교해 확연히 다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재킷은 우리가 기억하는 많은 영화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패션에 큰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록 스타들과 지금의 랩 스타들은 총체적인 모습으로 대중에게 기억되고 회자되지만, 배우들은 작품 속에서 ‘그 어떤 스타일의 재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패션의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쉰다.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든, 훌륭한 연출 때문이든 관객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는 영화 속 캐릭터의 패션은 수많은 칼럼을 흥미진진하게 꾸며준다. 또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며, 사람들에게 패션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번 시즌 폴 스미스는 남성복 컬렉션에서 강렬한 레드 컬러의 레더 싱글 버튼 코트를 선보였다. 이는 영화 <파이트 클럽> 에서 테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 걸치고 나왔던 재킷과 꼭 닮은 것으로, 테일러 더든은 단추를 여러 개 풀어 헤친 셔츠 위에 레드 레더 싱글 버튼 코트를 걸쳤고 이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마초적인 캐릭터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반면 폴 스미스는 위트 있는 공룡 캐릭터가 그려전 니트에 코트를 매치, 테일러 더든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던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베트멍과 준지, 마르니, 아스트리드 안데르센의 컬렉션에는 어깨 라인이 한껏 오버된 맥시 코트가 등장했다. 마치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옷을 훔쳐 입은 듯한 실루엣의 코트는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 주인공 커너(페리다 월시-필로)가 애정했던 코트와 흡사하다. 디자이너들이 터틀넥 톱, 바이커 재킷, 셔츠, 후디에 오버사이즈 코트를 매치한 것과 달리 커너는 학생들 교복 위에 걸치며 자신의 개성을 살렸고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완성한 룩에서는 스카프 장식의 실크 셔츠와 머스터드 컬러 팬츠, 데저트 부츠로 전형적인 1980년대 레트로 패션을 상기시켜주었다. 버버리는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나탈리 포트만)가 입고 나왔던 MA-1 항공 점퍼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마틸다가 입었던 옷처럼 좌측 소매의 지퍼와 포켓 디테일만을 살렸으며 14세 소녀(나탈리 포트만의 당시 나이가 14세였다)가 입음으로써 드러났던 기장과 실루엣까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디자이너들이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빛났던 재킷이 요즘 선보이는 패션쇼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인기를 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더불어 영화 속에서 돋보였던 재킷이 디자이너 개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현대 패션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변화되는지를 보고 있자면 더욱 즐겁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베트남 참전 용사로 등장하는 트래비스 버클(로버트 드 니로)이 상원위원 저격이라는 결전의 순간에 입은 M-1965 필드 재킷. 국내에서 일명 ‘M-65 야상 재킷’이라고 불리며 클래식한 디자인 그 자체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재킷을 고샤 루브친스키는 기존의 디자인과 실루엣은 유지한 채 가죽 재킷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올 옴므는 포켓을 정갈하게 달아 아주 포멀한 남성 재킷으로 완성했으며, 크레이그 그린은 커프스와 포켓 디테일을 아주 미니멀하게 재정비한 후 자신의 시그너처인 로프가 도드라지게 허리 벨트와 후디를 장식했다. 전체적으로 밀리터리 요소가 가득했던 디젤 블랙 골드는 트렌디한 오버사이즈 실루엣으로 M-1965 필드 재킷을 재해석했다. 영화 <콰드로페니아>에서 평생을 모드족으로 살기를 꿈꾸었던 지미 쿠퍼(필 다니엘스)는 군용품인 M-1951 피시테일 파카를 시종일관 입고 다닌다. 모드족의 상징이자 한국전쟁 당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탄생한 이 재킷을 겐조와 다미르 도마, 크리스토퍼 케인은 각각 핑크와 화이트, 실버 컬러로 선보였으며, 버버리와 페이스 커넥션은 전통적인 디자인은 유지한 채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과거 모드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뒷부분을 프린팅으로 꾸몄다. 게다가 크리스토퍼 섀넌은 블루 컬러의 PVC 소재를 이용하여 M-1951 피시테일 파카를 아주 과감하게 재해석하는 파격을 보였다.

라이더 재킷, 모터사이클 재킷은 남성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그런 연유로 많은 배우들의 간택을 받은 바이커 재킷은 영화 <위험한 질주>(1953)의 말론 브란도와 <그리스>(1978)의 존 트라볼타, <파이트 클럽>(1999)의 브래드 피트(모터사이클 재킷을 입고 등장한다) 등 당대 최고의 배우를 ‘진짜 사나이’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현대의 디자이너들은 바이커 재킷을 남성미를 어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발렌티노와 모스키노는 아주 키치한 프린팅을 통해 은하계와 만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음영과 주름을 표현했고, 생 로랑은 스팽글 소재를 사용하여 페미닌한 쇼트 라이더 재킷을 완성했다. 또 돌체 앤 가바나는 꽃과 큐피드를 자수로 새겨 넣었고, 준지는 마초적 분위기를 내고 싶은 남자 배우가 입었다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울 과장된 크기의 모토사이클 재킷을 선보인 것처럼 말이다. 영화 <디스 이즈 잉글랜드>, <트레인스포팅>, <아메리칸 히스토리 X> 등에서 스킨헤드 문화에 영향을 받아 시대의 정신에 저항한 젊은이들이 즐겨 입었던 보머 재킷도 마찬가지다. 프라다는 알록달록한 컬러의 울을 사용해 러블리한 보머 재킷을 선보였고, 돌체 앤 가바나와 드리스 반 노튼은 스팽글과 금색 스티치를 이용해 고급스러운 고딕풍의 디테일을 추가했으며, 생 로랑과 톱맨 디자인은 벨벳 소재를 사용해 보머 재킷을 완성했다. 더 나아가 오 주르 아 자르는 재킷 구석구석에 귀여운 태슬 장식을 붙여 넣었고, J. W. 앤더슨은 깜찍한 구름 모양의 포켓을 전면에 부착했다. 지금 런웨이에 등장한 보머 재킷과 영화 속 그들의 재킷을 바꿔본다면 그들의 반항기는 그저 귀엽기만 할 것이다. 반면에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범죄자이자 거칠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랜들 패트릭 맥 머피(잭 니콜슨)이 입고 등장한 가죽 블루종은 발렌티노와 까르벵, 지방시, 겐조 등의 컬렉션에서 볼 수 있듯 디자인의 큰 변화 없이 시대를 초월하기도 한다. 물론,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컬렉션을 완성하는 생 로랑은 당시 잭 니콜슨이 입고 등장했다면 볼레로 재킷과 다를 바 없었을 만큼 짧은 기장에 스팽글 프린팅과 크리스털 브로치까지 부착한 가죽 블루종을 선보였지만 말이다.

입추, 가을이다. 바야흐로 재킷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재킷을 걸쳐보자. TV 속 연예인이 입은 것과 똑같은 재킷을 구매해 그대로 따라 할 게 아니라, 내가 재밌게 본 영화에서 좋아하는 배우가 입은 의상을 떠올리며 재킷을 걸쳐보자. 지난달 칼럼에서 로고가 박힌 의상을 입는 것은 그 브랜드의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라 말했듯, 야전 상의를 입으면서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를 떠올리고 모토사이클 재킷을 걸치며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를 생각하는 것은 단언컨대 모방이 아닌 오마주다. 올가을에는 영화 <컨트롤>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록 밴드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가 착용한 트렌치코트를 코스튬해 입어볼 예정이다(코트의 후면에 ‘HATE’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반드시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이 디자인한, 조이 디비전의 <Unknown Pleasure> 앨범 커버가 프린팅된 후디 또는 티셔츠만을 입을 생각이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벌써 설렘이 가득한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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