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Art+Culture
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이랑

Text Ruby Kim
Photography Tae Hwan Kim

이랑

‘언제 어떻게 개죽음을 맞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오늘 하루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감독이자 뮤지션인 이랑의 새 앨범 <신의 놀이> 속 첫 문장이다. 더이상 이 시대에 CD 드라이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녀는 이번 앨범을 책으로 펴냈다. 음원은 웹 링크에 접속해 코드를 입력하고 내려받는다. 열 곡을 차례로 듣는데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져온다. 시대가 변한 만큼, 이랑도 변했다. 4년 전에는 멋내기를 좋아하고 명랑 쾌활했던 아가씨가 이제는 담담해진 목소리로 철학과 죽음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가벼운 시대에 가장 무거운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녀의 의지는, 살고 싶어서 ‘죽고 싶다’고 말한 사람들이 진짜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든 죄책감에 기인했다. 그날부터 이랑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글로 써내렸다. 옥탑 어두운 방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던 일, 쓸쓸한 어느 날 전화번호부를 뒤지던 일, 어디에도 초대받지 못해 외로웠던 일, 신의 존재에 대해 묻고 또 물었던 일 등 치부 같은 나날을 구구절절 고백했다. 그리고 노래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다시 말하면, 체험에 의한 위로다.

1집 앨범 <욘욘슨> 이후 거의 4년 만에 새 앨범을 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대본도 쓰고, 웹 드라마도 찍고, 영화도 만들고, 아이들 음악 가르치는 일도 하고 바빴다. 그 사이 틈틈이 녹음도 하면서 이번 앨범을 만들었다. 데드라인을 안 정하고 했더니 거의 4년이 걸렸다.

보도 자료에 마지막 앨범이 될 거라고 단언했다.

내 인생에서 음악은 이제 끝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화랑 드라마 글 작업을 같이하기 때문에 언제 또 앨범이 나올지 기약이 없다는 이야기였는데, 레이블 쪽과 미스 커뮤니케이션 된 것 같다. 정정해달라. 그 질문이 너무 많이 들어오더라(웃음).

앨범을 CD가 아닌 책으로 냈다.

이제 CD 드라이브가 없는 시대다. 나부터도 CD를 안 산다. 그렇다면 CD 자체에 공을 들이느니 포맷을 바꾸면 다양한 패키지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가사도 주절주절 읊는 게 많다 보니 텍스트 분량이 많고, 음악을 쓰게 된 배경 설명도 할 겸 에세이 형식으로 책을 만들게 됐다.

녹음은 카페에서 했다고.

아메노히라고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서 영업시간이 끝나면 새벽에 녹음했다. 잘 들어보면 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 전문 스튜디오는 익숙지 않아서 가장 마음이 편안한 장소를 택했다.

개인적으로 ‘웃어, 유머에’라는 트랙이 가장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하하, 히히히, 호호호, 헤헤헤를 반복하는데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꼭 왜 사냐 건 웃지요, 라고 말하는 것 같더라.

나도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다.

이번 앨범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 몇 년간 연속적으로 주변에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다. 자살한 사람, 암에 걸린 사람 등. 어느 순간 일상에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것이 들어왔다. 얼마 전에도 가까운 친구가 일상적인 문자를 주고받다 몇 시간 뒤 자살했다. 죄책감 같은 게 들었다. 그 순간 얼마나 무섭고 괴로웠을까. 미안했다. 그런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앨범을 만들게 됐다. 더 빨리 냈어야 했다.

책을 보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뭔가 배울 것을 찾는다’는 대목이 있다.

가끔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기쁨을 느낀다. 그럴 때면 ‘죽지 말자. 죽고 싶을 땐, 새로운 지식을 찾자’ 생각한다.

예술의 목표는 위로라고도 했다. 당신을 위로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들이다. 친구들이랑 영화나 드라마 작업을 할 때 즐겁다.

작업이라…. 최근 윤성호, 박동훈 감독과 웹 드라마 <게임회사 여직원들>을 연출했다.

<출출한 여자>로 인연이 된 윤성호 감독 제안으로 같이하게 됐다. 11편을 셋이 나눠 연출했는데, 감독들마다 성향이 달라서 결과적으로 시너지가 생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원작 만화 캐릭터를 새롭게 구성하는 게 재밌었는데, 게임회사라는 오피스 자체가 특이한 공간 설정인 만큼 캐릭터는 오버스럽지 않게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귀여워 보일까를 고민했다.

영화 작업은 언제 시작할 건가?

작년에 <집단과 지성>이라는 웹 시리즈를 찍어놨는데, 아직 편집을 못 했다. <게임회사 여직원들>보다 훨씬 전에 만들었는데,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서 묵히고 있다.

다시 찍어야 하나?

못 한다. 친구들 도움에 자체 제작으로 빠듯하게 만든 거라.

그럼 어떻게 하나?

모르겠다. 그래서 대본집으로 낼까 이래저래 궁리 중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앨범 속 첫 문장에 썼던 글처럼 즐겁게 살고 있나?

죽고 싶다가도 맛있는 체리를 먹으면서 오늘 안 죽길 잘했다, 생각하기도 한다. 즐거울 땐 즐겁고, 힘들 땐 힘들고. 다들 그렇지 않나? 매일 노력한다. 즐겁게 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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