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XXL

큰 옷을 찾아 입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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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Yu Ra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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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럭셔리’가 의미하는 바는 뭘까? 과거 ‘값비싸고 화려한 패션’이란 뜻을 지닌 럭셔리는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대상이었다. 입고 나가려 하면 얼룩이 묻진 않을까, 스크래치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노심초사에 제 몸보다 소중히 여겼던 게 사실이다. 요즘의 대중에게 럭셔리는 이제 그런 의미가 아니다. 무엇보다 옷을 입었을 때 자신이 편하고 자유로운 기분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쿨한 태도에 힐링할 수 있는 여유로움. 거기에 나만의 개성이 들어간 창조적인 스타일링이 가능할 것.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바뀐 럭셔리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차선책은 바로 ‘실루엣’이다.

패션사를 살펴보면,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실루엣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연대별로 대표하는 실루엣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최근에 선보인 것만 놓고 보자면 2000년대의 마틴 마르지엘라를 놓칠 수 없다. 당시 마틴 마르지엘라가 의복을 해체하고 전위적인 스타일을 창조함으로써 기존의 패션계를 뒤집어놓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눈에 띈 것은 2000 S/S 시즌, ‘사이즈’에 반기를 든 컬렉션. 원래 사이즈보다 과도하게 강조한 넓은 어깨, 그리고 어깨에서 소매로 바로 떨어지는 직선적인 실루엣은 1980년대에 유행했던 ‘파워 숄더’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구조적이고 조형적인 형태는 신선하다는 평가를 불러내기에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의 아이템이나 사고방식을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신선한 자극을 안겨줬다.

이것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럭셔리의 새로운 정의와 함께 다시 돌아왔고, 마틴 마르지엘라의 영향을 깊게 받은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그들의 해체주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에 공개된 발렌시아가의 2017 S/S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넓고 각진 어깨의 오버사이즈 재킷이 주를 이뤘다. 이는 1984년에 선보인 앨범 겸 영화 <스톱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에서 뉴웨이브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보컬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입고 있던 XXXL 사이즈의 회색 슈트와 꼭 같은 모양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남성복의 새로운 실루엣을 정의하는 게 목표였다”고 쇼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구조적인 실루엣을 차용하여 의상의 어깨 비율을 확장하거나 테일러링에 더욱 신경을 썼다.” 결국 그는 자신이 속한 발렌시아가와 가장 존경하는 마틴 마르지엘라가 디자인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이 ‘실루엣’이란 사실을 발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실루엣을 재정비함으로써 그는 옷에 대한 자신의 철학인 ‘옷을 통해 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우스갯말로 ‘어깨 깡패’처럼 보이는 발렌시아가의 오버사이즈 재킷은 체형에 상관없이 누가 입든 강인하고 자신감 넘쳐 보일 게 분명하다. 이는 곧 의복을 뒤집고 해체하는 표면적인 작업에 열중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입는 사람의 ‘태도’나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함축적인 의미마저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장된 실루엣을 괴기스럽게 활용한 디자이너로는 라프 시몬스를 꼽아야 마땅하다. ‘악몽과 꿈(Nightmares & Dreams)’이란 테마로 전개한 2016 F/W 컬렉션에서는 무릎 위 기장의 오버사이즈 스웨터가 가장 먼저 등장했다. 깊게 파인 브이넥과 길게 늘어진 소매는 닳고닳아 올이 풀린 것처럼 장식하여 완성했고, 곳곳엔 패치워크 디테일을 넣어 프레피 룩을 모태로 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형이나 누나에게 낡은 옷을 물려받은 것처럼 보이는 스웨터 차림은 라프 시몬스가 상상해낸, 폐교에서 나타날 법한 유령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을 창조해내길 좋아하지만 그만큼 삐뚤어지거나 이상한, 우울한 무언가를 만드는 데에도 욕심이 있다”고 라프 시몬스는 말한다. 그는 별다른 장식 없이 옷의 사이즈만 부풀려 강한 인상과 비정상적인 모습을 만들었는데, 이는 룩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할 정도로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낸다. 컬렉션에서는 니트 풀오버 이외에도 체크 코트, 퍼프 점퍼 등을 일부러 크게 만들어 다소 장난기가 담긴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체적이고 창조적인 테일러링을 즐겨 하는 자크뮈스 역시 재킷의 형태에 주목했다. 컬렉션 테마부터 ‘재건축(La Reconstruction)’이라 명명한 그들의 2016 F/W 컬렉션은 시몬 포르테 자크뮈스 주도 하에 실루엣을 재창조했다. 가장 강조했던 건 바로 어깨. 이전 시즌보다 한층 부풀린 어깨는 재킷과 블라우스 등에 적용되었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즐겨 사용하는 자크뮈스의 기하학적인 디테일과 만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큰 옷에 집중하고 있는 디자이너들 중에서 ‘힐링’을 보다 강조한 컬렉션이 있으니, 바로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다. 이미 그녀는 셀린느의 여러 컬렉션을 통해 여성의 굴곡진 몸매를 드러내기보다는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옷을 직접 입어봐야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녀는 여성의 자유와 권위를 최우선으로 여겨 편안하면서 단조롭고 모던한 디자인을 전개한다. 이번 시즌 셀린느의 컬렉션에 등장한 ‘킥 플레어(Kick Flared)’ 팬츠는 컬렉션 전반을 구성하는 주된 아이템 중 하나였다. 밑단이 길고, 통이 넓어 걸을 때마다 발차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붙은, 과장된 형태의 이 바지는 어떤 체형이든 두루 입을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하루 종일 업무를 봐도 편하다고 느낄 만큼 헐렁한 실루엣은 길게 내려오는 상의와 매치하여 여성스럽고 우아한 면모마저 드러냈다. 피비 파일로는 옷의 형태를 넉넉하게 만들어, 여성의 몸매를 억압하는 대신 해방시켰다고 볼 수 있다. 몸을 조이거나 요란한 장식 없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그녀가 강조하여 표현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과 일치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릴랙스 웨어’를 내세운 준 다카하시의 언더커버 컬렉션도 실루엣이 주는 편안함에서 시작됐다. 그는 “언더커버만의 방식으로 편안한 옷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며,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파자마다. 커다란 가운과 통 넓은 바지는 누구든지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파자마는 준 다카하시를 거쳐 실크나 퍼 소재로 제작되거나, 콜라주 작가 마태오 부렐(Matthieu Bourel) 작품의 프린트가 더해짐으로써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며 컬렉션에 등장했다. 실제로 그는 런웨이에 다양한 나이대의 모델을 서게 하여 여유로운 실루엣이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입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편하다는 것을 직접 알려줬다.

DKNY는 오버사이즈 실루엣을 대대적으로 활용해 특대 사이즈로 확장한 셔츠 드레스와 이불처럼 몸을 감싼 퍼프 재킷 등을 컬렉션에 등장시켰다. 듀오 디자이너 다오이 초(Dao-Yi Chow)와 맥스웰 오스본(Maxwell Osborne)은 “톰보이 같은 느낌으로 섹시함을 연출하고 싶었다. 자신의 원래 사이즈보다 크게 옷을 입고 활동했던 1990년대의 여성 그룹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컬렉션에 대한 부연 설명을 전했다. 즉, 여자들이 큰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그들은 섹시하다고 여긴 것이다. DKNY 컬렉션은 과장된 실루엣의 재킷과 슈트를 비롯해 새틴 드레스나 크롭트 톱, 뷔스티에 톱에 통 넓은 바지를 더해 1990년대의 향수를 품은 오버사이즈 룩을 제시했다.

설사 큰 옷이 개그 코너 ‘큰 집 사람들’에나 등장할 법한 개그맨들을 연상하게 만든다 해도 큰 옷의 질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과장됨 속에서 찾는 쿨함과 힐링, 그리고 개성은 분명 현대 ‘럭셔리’의 가장 큰 단락을 차지하는 현재 진행형 코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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