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과 공전

사진으로 사진을 의심하는 사진가, 백승우.

자전과 공전
Betweenless-#001, 2016, Digital Pigment Print, 120 x 150 cm.

Text Ji Woong Choi

Photography Seung Woo Back

자전과 공전
Utopia-#017, 2008, Digital print, 180 x 210 cm.

사진가 백승우는 내내 사진을 부정하고 거리를 두려 애쓰고 있 었는데, 나는 그의 작업에서 사진을 향한 애정과 온기를 느끼는 쪽이다. 그러니 그 진위를 따져 물을 수밖에. 기울어가는 가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층 카페에 앉아 커피를 나눠 마신 한 시 간 동안 나는 그 벽을 흔들기 위해 애썼고, 사진가 백승우는 정확 한 단어나 표현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진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말은 아래와 같고, 그 답을 담은 백승우의 작업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 있으니 마음이 동한다면 직접 확인해보 시라.

 

 

사진가 백승우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올해의 작 가상 전시에 걸린 신작에 대한 대화를 주로 하는 게 어떨까 싶다. 한쪽 벽을 메우고 있는 ‘Betweenless’가 특히 압도적이다.

우선 이것을 좀 보겠나? (자신의 가방에서 종이 뭉치 를 꺼낸다) 이번 전시에 관한 ‘도면’이다.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전통적인 사진을 공부했지만, 이제 사진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내가 직접 ‘찍 지’ 않은 사진으로도 작업을 하고 있다. ‘Betweenless’는 유럽이 나 미국을 다니며 벼룩시장에서 직접 구입한 35mm 필름의 일부 를 극도로 확대한(Blow up) 작업이다. 전시를 보면 알겠지만 읽 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인물의 표정이나 배경, 이미지 전체 가 다 뭉개져버렸으니까.

 

지금 당신의 답변 중 몇 가지 표현이 나를 건드린다. “사진의 역 할은 끝났다”라는 말, 늘 궁금했다. 그 감정은 허무인가, 냉소인 가, 포기인가?

전부 다 아니다. 그냥 현실일 뿐이다. 내가 사진을 공 부하던 시절만 해도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 일을 한다는 건 특수 성이 있었다. 그 이전 세대에게는 심지어 특권이나 사명감이 있을 정도였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잘 찍는다. 사진 전공자보다 사진을 잘 찍는 일반인도 많다. 나도 깜짝 놀란다. 하지만 두서없는 단어 를 쏟아내는 것과 문장의 구조적인 맥락을 헤아리며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다르다. 나는 현대의 사진가가 더 이상 ‘찍는’ 일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거다. 법칙을 만드는 게 나 의 관심사다.

 

‘Betweenless’도 그렇지만 여러 나라의 벼룩시장에서 사진을 수집하는 것으로 안다.

정성스럽게 보관된 필름을 구입하는 거다. 그 앨범은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것들을 벼룩시장 에 내다 파는 이들은 앨범 주인의 가족인 경우가 많다. 남겨진 가 족들에게는 그저 짐인 거다.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죄책감이 드는 지 그걸 돈을 받고 팔겠다고 한다. 내가 그 앨범을 구입하는 순간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으로 작동하던 사진의 힘은 시효가 만료된 거다. 나는 그 사진들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다. 그 냥 두꺼운 이미지로만 작용한다. 그렇게 시효가 만료된 이미지를 어떻게 재가공하고 재편집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드느냐가 이 전시의 화두인 것이다.

왜 ‘Blow up(필름의 일부를 극도로 확대)’이어야 하나?

어차피 시효가 만료된 사진을 온전히 보여준다고 해 서 읽을거리가 생기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이미지를 내 마음 대로 훼손한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는 거다. 더불어 내 나름대로 어떤 게임을 하는 것이기도 한데, 현대의 사진 대부분은 관객들 로 하여금 더 자세히, 가까이 오게끔 끌어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 이 든다. 나는 내 작업과 관객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고 싶었다. ‘Betweenless’ 작업은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정보가 없는 이미지를 보고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읽으려 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 실험을 해본 거다.

 

개인적으로 현대 사진의 맹점 중 하나로 ‘아카이브’를 들 수 있지 않나 싶다. 당신의 작업도 사실은 거기서 출발하는 것일 텐데, 그 기준과 아카이브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아주 단순하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이미지를 모은다. 그냥 관심이 가는 것들. 마치 웹 서핑을 하는 것과 비슷한데, 사람 들이 웹 서핑을 할 때 정확하거나 논리적인 기준 또는 법칙에 따 르는 게 아니듯 그냥 끌리는 이미지를 아카이빙한다. 아카이브라는 게 굉장히 공정하고 정확한 사실처럼 포장되어 있 지만 실은 조작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고 증명하는 수단이나 용도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런 아카이브의 특 성을 차용하는 작업을 한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내 작업은 다 거짓말이다. 진실에는 논리가 필요 없다. 거짓말일수록 구조가 치밀하고 앞뒤가 잘 맞아야 한 다. 그래야지만 사람들이 속지 않나. 처음 내가 보여준 내 작업의 설계도도 그런 치밀함의 흔적이자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진 실을 찍는 사진가가 아니다. 그건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어 떻게 해체시키고, 그것들을 다시 봉합하고 꼬아서 비틀지를 고민 하는 작업자다. 성공적인 거짓말을 위해서.

 

오늘도 그렇지만 사진가 백승우는 전통적인 사진의 가치를 계속 해서 부정하고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당신은 누구 보다 사진의 전통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전통적인 사진의 가치를 계속해서 부정하려 하 는 건 맞다. 하지만 내 출발은 ‘사진’이기 때문에 애정을 기반으 로 한 부정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하다. 물론 사진을 우러러보 거나 신성하게 생각하는 쪽도 아니라는 건 꼭 말하고 싶다. 마치 ‘자전과 공전’ 같은데, 나는 사진술에서 벗어나려 자전하고 있지 만 결국은 사진 안에서 공전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사진이라는 매체는 이미 충분히 위대했고, 지금도 제 몫을 하 고 있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가기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고 흩어 진 파편이 너무 많다. 나는 그것들을 정리하고 싶은 거다.

 

엉뚱한 질문이긴 한데, ‘찰나의 순간’이니 ‘기다림의 미학’이니 그 런 말을 들으면 어떤가?

그게 도대체 어디에 있나? 재수가 좋은 거지.

 

백승우를 ‘사진가’로 쓰는 일을 반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계속 ‘사진가’라고 쓸 작정이다. 직업인으로서 사진 가로 산다는 일은 어떤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해도 그게 일이 되면 스트레스 를 받고 고민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나도 그렇다. 취미로 하는 사 람과 직업인의 가장 큰 차이는 어떤 문제, 그러니까 벽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맞서느냐 도망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즐기는 사람이야 재미없어지면 도망가면 된다. 하지만 직업인이라면 그 위기를 극복하고 결국은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부딪치고 쓰러 지는 일에 겁을 내면 안 된다.

 

나도 좋아하는 ‘Blow up’과 ‘Utopia’ 시리즈를 발표하며 당신은 “사진 매체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이제 해답이 좀 보이나?

알 것 같기도 하고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반복이다. 나는 단지 이야기를 던지는 사람이고, 혹시라 도 내 이야기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이 또 뭔가를 말하 고 만들어내면서 함께 가다 보면 결국 뭐가 보이지 않을까. 그렇 게 큰 욕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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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 hw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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