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마 워드부터 나탈리 웨슬링까지.

1990년생인 나의 또래는 공감할 만한 모델 이야기.

젬마 워드부터 나탈리 웨슬링까지.
2006년의 젬마 워드.

Text Jong Hyun Lee

 

젬마 워드부터 나탈리 웨슬링까지.
나탈리 웨슬링.
젬마 워드부터 나탈리 웨슬링까지.
몰리 베어.

“우리는 지금 호나우지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최고의 반열을 넘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리오넬 메시가 2006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세월, 호나우지뉴는 시대의 중심에서 내려왔고, 이제 우리는 리오넬 메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또 어떤 다른 시대, 누구의 시대에 살고 있을까? 지금 시국에서는 당연히 한마음 한뜻으로-나를 포함한-대한민국 국민 95% 정도는 최순실이라는 인물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렇듯 시대를 정의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 인물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팀(도널 글리슨)과 매리(레이첼 맥아담스)를 맺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케이트 모스다. 매리는 그녀를 두고 “케이트 모스의 마법은 그녀의 삶에 있다. 그녀는 요즘 작품보단 초창기 작품에서 편안한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아무리 최신 패션을 주도한다 해도 그녀는 아직 해변에 발가벗고 누워 있던 귀엽고 평범한 여자”라는 견해를 피력하며 그녀가 최고의 모델이라는 것에 동의를 구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 팀은 그렇게 사랑에 빠지지만 내가 영화 속의 팀이었다면 꽤나 큰 문제에 봉착했을 것이다. 나에게 최고의 모델이자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귀엽고 평범한 여자는 다름 아닌 젬마 워드(Gemma Ward)이기 때문이다. 패션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해 아주 사소한 것에도 미친 듯이 빠져들던 나의 10대 시절은 케이트 모스의 시대를 지나 베이비 페이스 모델이 패션계에 들이닥치던 시기였다. 젬마 워드를 선두로 샤샤 피보바로바, 헤더 막스, 아기네스 딘 그리고 국내에서는 이솜이 주류 모델로 큰 사랑을 받았다. 매리 역할을 맡은 1978년생 레이첼 맥아담스는 케이트 모스의 시대를 살았을지 몰라도 1990년에 태어난 나는 젬마 워드의 시대를 살았다.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모델 한 명을 뽑으라면 주저 없이 젬마 워드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며 젬마 워드가 패션계를 떠났듯, 나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때론 흐름과 상관없이 선호하는 모델은 달라졌다. 젬마에 대한 사랑은 데뷔 초 흡사한 이미지를 풍겼지만 점점 섹시하면서 퇴폐적인 페이스로 탈바꿈한 샤샤 피보바로바로 이어졌고, 군 복무 시절에 접한 크리스토프 데카르딘의 록 시크에 열광한 나는 데카르딘의 발맹 그 자체와 다름 없었던 프레야 베하 에릭슨에 깊게 빠져들었다. 이후 헬무트 뉴튼, 리차드 아베돈, 어빙 펜의 옛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는 린다 에반젤리스타와 같은 케이트 모스 이전에 전성기를 누렸던 ‘슈퍼’ 모델의 매력도 느끼게 되었고, 비슷한 분위기의 다리아 워보이에 뒤늦게 빠져 자주 검색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또 파올로 로베르시가 <Egoïste No.15>에서 찍은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와 카렌 인더비첸-월러(Karen Inderbitzen-Waller)가 <Black Magazine>에서 찍은 코디 영(Codie Young)처럼 사진 한장, 화보 하나로 엄청난 팬이 되기도했다. 이외에도 모델로서 그리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한 아나이스 폴리오트, 조세핀 로더만스, 카시아 스트러스와 반대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걸은 린제이 윅슨과 유미 램버트처럼 사랑스러운 얼굴에 잠깐씩 마음을 빼앗긴 적도 있었고, 칼리 클로스와 줄리아 노비스, 혜박처럼 진정 모델다운 프로포션과 애티튜드에 반해 그녀들의 모든 화보를 섭렵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모델의 유행은 패션 트렌드에 따라 지젤 번천에서 케이트 모스로, 케이트 모스에서 젬마 워드로, 젬마 워드에서 프레야 베하 에릭슨으로 이어진 것처럼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지금은 카라 델레바인, 켄달 제너, 지지 하디드 그리고 국내의 아이린처럼 셀렙 못지않은 팬을 거느린 스타 모델, 즉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많아 마케팅 효과가 있는 모델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그들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서 자신들만의 이미지로 전방위적인 활약을 하는 나탈리 웨슬링, 몰리 베어, 캐서린 무어 그리고 최소라가 있다.
각각 2014 S/S, 2015 S/S, 2016 F/W, 2014 S/S 시즌에 세계 무대에 얼굴을 알린 이들은 하위문화의 개성을 지닌 채 하이패션을 넘나든다. 나탈리 웨슬링은 양쪽 팔에 스케이트 문화를 바탕으로 한 스트리트 브랜드 반스의 로고와 ‘SKATE’라는 단어를 타투로 새길 만큼 스케이트보드와 스트리트 문화해 심취해 있어 에디 슬리먼의 생 로랑과 같은 컬렉션에만 특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루이 비통과 프라다는 물론 샤넬과 디올 컬렉션에 꾸준히 등장한다. 테니스 선수 출신답게 스트리트 룩을 스포티하게 즐기며 인스타그램에서는 한없이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몰리 베어는 오프 화이트와 샤넬을 넘나들며 <제5원소>의 밀리 요보비치, <밀레니엄: 여자를 중오한 남자들>의 루니 마라를 섞은 듯한 헤어스타일과 액세서리를 즐기는 캐서린 무어는 아주 펑키한 비주얼에 특화된 알렉산더 왕부터 샤넬, 샬라얀과 같은 쇼에 등장한다. 평소 코스프레 의상에 데모니아와 TUK와 같은 신발을 매치하며 독특한 펑크 패션을 선보이는 최소라는 이번 시즌 50개 이상의 브랜드 런웨이를 걸으며 경계가 없는 전방위적인 활약을 했다. 거리의 냄새가 많이 느껴지는 이들이 과거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등장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커리어와 기회를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 문화에서 가져온 것들이 최상의 하이패션이 되는 지금, 그들의 정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이들이 더욱 선호받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이들이 가진 개성은 디자이너의 의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닌 또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이질적이거나 동질적인 방식으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이번 <데이즈드> UK의 25주년 커버로 지지 하디드와 나탈리 웨슬링이 등장했다. 과거 스키니, 글래머, 베이비 페이스, 톰보이처럼 하나의 범주에 갇히지 않고 더 많은 스타일을 패션계가 수용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고 환영할 부분이다. 인종의 다양성과 성의 다양성에 이어 개성의 다양성까지 받아들인 지금, 그다음은 과연 어떤 것이 될까? 고샤 루브친스키와 베트멍에서 그것에 대한 힌트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컬렉션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있는 지금 모델에 대한 환상마저 깨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건 왜일까? 2013년, 패션 저널리스트 오선희의 개인 블로그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도 초반의 패션학도들에게 헬무트 랭은 어떤 컬트였다. 어쩌다 랭의 작품을 사는 날에는 ‘시크’하다는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고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셀린느를 사도 그때처럼 뿌듯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새로움을 좇아가다 점점 평범함을 추구하는 요즘, 나도 그 선배와 같은 씁쓸함을 다가올 미래에서 느끼지 않을까? 부디 나의 미래는 셀린느가 헬무트 랭보다, 젬마 워드가 케이트 모스보다 더 짜릿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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