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좋아요

여전히 떨리는 그 이름, 나이키.

Fashion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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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ng Hy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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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100만원이 넘는 옷도 구매하는 똥배짱이 있지만, 어릴 때는 10만원이 조금 넘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신발을 하나 갖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옷 구매에 관하여 독자적인 의사를 비로소 중학생 때 표현하기는 했지만 늘 원했던 브랜드의 이름, 나이키를 거론하는 건 부모님한테 큰 부담을 주는 일 같았다. 10세 때 나이키 운동화를 아버지에게서 처음으로 선물받았다. 약주 한잔하고 귀가하는 길에 나이키 운동화를 사 오셨는데, 다음 날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애한테 이렇게 비싼 신발을 사주는 게 말이 되냐고 호통을 쳤고, 아버지는 물론 나까지도 덩달아 혼이났다. 어머니는 기어코 나의 첫 나이키 운동화를 환불하셨고, 울고불고 난리가 난 나를 달래고자 아식스에서 운동화를 한 켤레 사주셨다. 그 당시 아식스와 나이키의 운동화 가격이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단 몇 만원을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머니에게 나이키는 ‘최고로 좋은’ 스포츠 브랜드였고, 최고로 좋은 브랜드를 사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던 어머니가 지금은 무겁고 비싸기만 한 부츠는 집어치우고 나이키같이 편하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운동화를 사라고 닦달하는 건 참 재밌다.

비로소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나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영광을 누렸다. 지금도 기억할 만한 디자인의 아이템은 아니었고 ‘에어 맥스’의 한 종류이지 않았나 싶다. 첫 나이키를 가지는 건 그토록 어려웠지만 시작이 반이듯 그 이후에는 질리도록 나이키를 신었다. 20세 때 고향의 나이키 매장에서는 100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 한해 20% 할인을 해주는 마케팅이 있었다. 우리 집안도 나이키를 살 만큼 샀다는 생각에 누적 금액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직원이 깜짝 놀라며 500만원이라 말했다. 그렇다. 그때까지 우리 집의 모든 스포츠 용품은 나이키에서 구매했다.

부모님의 영향이든, 그들의 뛰어난 마케팅 능력 덕분이든 지금도 운동화나 좋은 스포츠 용품을 사려 할 때는 가장 먼저 나이키를 떠올린다. 새 축구화를 살 때도, 가장 좋아하는 두 명의 축구 선수 스티브 제라드와 리오넬 메시의 메인 스폰서가 아디다스임에도 불구하고 늘 나이키를 선택했다.

나이키는 1964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의 육상 선수와 코치 관계로 만난 필립 나이트(Philip Knight)와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이 설립한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가 그 전신이다. 초기 블루 리본 스포츠는 독자적인 신발을 만들어내는 회사가 아니라 필립 나이트가 당시 매료되었던 일본의 운동화 오니츠카 타이거(아식스의 자회사, 1977년 오니츠카 타이거를 포함한 3개 회사가 합병을 하며 아식스라는 모회사를 세웠다)를 독점 수입 판매하는 회사였다. 이어 합류한 빌 바우어만이 자신이 고안한 샘플 신발 디자인을 오니츠카 타이거에 제공하며 운동화 디자인에 뛰어든다. 4년 뒤인 1968년에는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최초의 독자적 제품 ‘코르테즈(Cortez)’를 선보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 독자적인 디자인 제품이 큰 사랑을 받으며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약화됐다.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의 미국식 발음인 나이키를 회사의 새로운 상호로 정하고 그래픽 아트를 전공하는 제자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시간당 2달러의 시급으로 로고 제작을 제안했다. 그녀는 17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할애해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이키 로고를 탄생시켰다. 34달러 정도의 가치로 시작한 나이키는 2016년에 275억 달러, 한화로 32조3200억원의 가치(포브스 선정 기준)를 지닌 기업이 된다.

사실 나이키는 컨버스(1908), 휠라(1911), 아디다스(1924), 엄브로(1924), 푸마(1948), 아식스(1949), 리복(1958) 등의 스포츠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그리 역사가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정상의 위치에 있었던 이유는 공격적인 마케팅에 있다. 회사 설립 초기 브랜드의 낮은 인지도는 이미 주축을 이룬 스포츠 브랜드들에 밀려 큰 홍보 효과를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키는 직접 방문하는 세일즈 전략을 통해 낮은 인지도를 극복했고,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고객(스포츠 선수)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행운까지 얻었다. 그 결과 나이키를 대표하는 기술인 ‘나이키 에어 쿠셔닝’이 등장할 수 있었고, 그 기술을 장착한 에어 맥스 시리즈가 나이키에 얼마만큼의 수익을 가져다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긴 말이 필요 없다. 1990년대 태어난 나는 중고교 때 에어 맥스 90 시리즈와 95 시리즈, 97 시리즈를 유행을 따르듯 신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조거 팬츠에 에어 맥스 90·95·97을 신는 스타일의 유행은 유효하다.

나이키의 기술적 혁신은 끝이 없다. 공기 역학과 온도 조절 기능을 적용한 스위프트 슈트와 재활용이 가능한 마라톤 싱글렛, 쿠셔닝 시스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삭스(Shox), 가벼운 경량감으로 다리의 힘을 강화시키는 프리(Free), 애플과 협력을 통해 조깅의 패러다임을 바꾼 나이키 플러스를 2000년대 초 선보였다. 2008년에는 역사상 가장 가벼운 제품으로 신발의 무게를 최대 18%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알려진 플라이와이어(Flywire), 2012년에는 한 올의 실을 활용해 이음새가 없도록 니트 형식으로 제작한 플라이니트 기술을 공개했다. 사실 이런 기술은 아주 미묘하기 때문에 동네 어귀를 달리고 모랫바닥에서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그러나 최고의 제품을 최고의 선수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나이키는 늘 최고의 마케팅 효과를 누렸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영국 육상 선수 스티브 오벳(Steve Ovett)이 나이키 러닝화를 신고 처음 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높은 자리에 선 이후 나이키는 늘 최고의 스포츠 선수와 함께했다. 1990년대 최고의 육상 선수 마이클 존슨과 칼 루이스부터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 축구 선수 호나우두와 호나우지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나이키의 제품 지원으로 정상에 섰다(아시아 시장에서도 박지성과 일본의 축구 영웅 나카타 히데요시의 스폰서였다). 그리고 나이키를 이야기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 이후 가장 뛰어난 농구 선수라 불리는 르브론 제임스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지만 마이클 조던은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선수라 말할 정도로 그 어떤 스포츠 분야의 스타보다도 압도적인 지지율과 커리어를 걸었다. 그는 사실 아디다스의 팬이었다. 조던은 유명 선수가 되면 아디다스와 스폰서십을 체결할 마음이었으나 아디다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그에게 제시한 제안은 기대 이하였고, 더 높은 재정적 후원과 자신의 이름을 딴 스니커즈 라인 론칭이라는 조건을 제시한 나이키와 손을 잡았다. 마이클 조던을 놓친 아디다스는 그나마 축구계의 영원한 판타지 스타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하며 아쉬움을 조금은 달랬 수 있었겠지만, 나이키의 조던 시리즈가 미국 내 농구화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2016년 나이키 그룹과 2015년 <포브스> 발표 참조)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끊임없이 아디다스를 괴롭게 한다.

1987년에는 비틀스의 ‘Revolution’ 음악과 함께한 광고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다음 해에는 지금까지도 나이키의 의류에서 볼 수 있는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을 통해 텔레비전 속에서도 자신들의 가치와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게다가 1989년에는 영화 <빽 투 더 퓨쳐2>가 그려낸 36년 뒤의 미래(2015)에서 최첨단 운동화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단순한 이미지 마케팅이 아닌 영화 속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제작에 들어갔고 2011년에 1500족 한정판을 이베이 경매에 부쳤다. 낮게는 2300달러, 많게는 9959달러에 완판된 맥플라이 시리즈는 약 47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구글 공동 창립자 세르지 브린과 그의 아내 앤 원즈츠키가 추가적으로 기부한 500만 달러를 합해 총 940만 달러의 금액을 <빽 투 더 퓨쳐>에서 맥플라이 역을 맡은 마이클 J. 폭스가 운영하는 재단 ‘The Michael J. Fox Foundation for Parkinson’s Disease’에 기부하기도 했다. 또, 2035년의 미래를 다루는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2004)에서 윌 스미스는 빈티지 컨버스 ‘척 테일러’를 구매한다. 옛것이 더 예쁘다 말하는 윌 스미스의 대사에서 컨버스 운동화의 영원성을 느낄 수 있는데, 영화가 개봉된 2004년이 나이키가 컨버스를 인수한 이듬해인 것을 감안하면 나이키의 똑똑한 마케팅 방식이 컨버스에도 투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키는 늘 정상의 위치에 있었지만 2016년 나이키의 경제적 지표는 나이키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타임>지에 따르면 2013년 나이키는 미국 내 소매 운동화 판매에서 59% 점유율을 차지했고 2015년에도 8%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6년의 나이키 주가는 10% 이상 하락하며 다우 지수에서 최악으로 기록되었고, 8% 매출 상승률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주문 증가율이 매우 낮아 발표 후 한 시간 뒤 주가가 4%나 하락했다.

나이키가 2016년에 주춤했던 이유를 <타임>지는 3가지로 요약했다. 스니커즈의 역할 변화와 올드 스쿨 디자인의 유행, 셀레브리티의 선택이 그것인데, 그들의 관찰은 아주 정확하고 날카롭게 한 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 나이키는 언더커버와 스투시, 네이버후드, 마스터 마인드, 꼼데가르송 등의 매니악한 브랜드들과의 잦은 협업으로 나이키만의 독자적인 패션성을 부여했다. 게다가 카니예 웨스트와 함께 만든 에어 이지(Air Yeezy) 시리즈로 마이클 조던에 이어 또 한 명의 슈퍼스타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카니예 웨스트와의 관계는 단 두 번의 협업 이후 깨졌고, 강력한 라이벌 아디다스에 빼앗겼다. 아디다스와 함께한 카니예 웨스트는 나이키에서와 달리 매 시즌 또는 분기별로 새로운 이지 시리즈(이지 부스트)를 선보이고 있으며 그 인기가 얼마나 열광적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퍼렐 윌리엄스도 이미 아디다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시즌마다 협업을 하고 있으며, 그와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여성 팝 스타 리한나는 퓨마와 함께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그다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리타 오라까지 아디다스와 손을 잡았다). 거리의 문화와 힙합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금의 패션 시장에서 그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모두를 아디다스에 뺏긴것이다(퓨마는 아디다스의 자회사다). 아디다스의 올드 스쿨 스니커즈인 ‘슈퍼스타’가 힙합 패션의 영향과 인기 속에서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지금. 나이키가 패션성이 가장 중요시되는 지금의 스니커즈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느껴진다.

물론, 최근 슈프림과 함께 올드 스쿨 디자인의 ‘업템포’를 공개하고 이전에는 지방시와 리카르도 티시,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기능성 제품에 발맹의 디자인성을 첨가했다)과 같은 하이패션 디자이너와의 협업 발표로 이슈의 중심에 오르긴 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고샤 루브친스키와 슈프림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와의 협업 제품을 발 빠르게 선보이고, 이미 요지 야마모토나 스텔라 매카트니와 같은 디자이너와의 파트너십으로 독립적인 브랜드까지 만들어내는 아디다스의 행보에 비하면 그 힘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어느 순간 국내의 나이키 매장에 들어서면 러닝이 주축이 된 디스플레이와 마주하게 됐다. 국내의 러닝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지만 그 여파로 인해 어느 순간 나이키의 의류를 사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대신 최근 일적인 이유로 자주 방문하게 된 동묘의 많은 빈티지 숍에서 많은 양의 나이키의 빈티지 의류를 만날 수 있었다. 아디다스와 리복, 카파와 같은 다른 빈티지 스포츠 브랜드와 함께 걸려 있었지만 나를 설레게 했던 디자인은 역시나 나이키의 옛것이었다. <타임>지의 간단한 웹 기사에 대해 나이키가 어떤 관심과 태도를 보일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나이키의 올드 패션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훗날 내 자식의 첫 번째 운동화는 나이키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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