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예술이 아니면 뭐야

화가 김희수의 보통 날.

이게 예술이 아니면 뭐야
채색을 마치지 않은 미완성 작품도 놓여 있다.
이게 예술이 아니면 뭐야

Text Ruby Kim
Photography Yu Lee

이게 예술이 아니면 뭐야
이게 예술이 아니면 뭐야
이게 예술이 아니면 뭐야
이게 예술이 아니면 뭐야
무표정한 그림 속 인물들.

 

 

화가 김희수의 두 번째 개인전 이 열린 곳은 석촌호수 옆 작은 갤러리 카페였다. 양수리 작업실을 통째로 옮겨놓은 전시 공간에는 엄청난 양의 드로잉과 페인팅 작품들로 빼곡했다. 거친 선으로 쓱 그린 것 같은 그림 속 인물들은 대체로 눈이 반쯤 감겨 있거나 아주 감겨 있었다. 모든 그림에 제목은 붙이지 않았다. 벽면과 바닥을 가득 덮은 수십 명의 얼굴과 몸짓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긴 걸까. 그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빙긋 웃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전시 오픈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솔직히 백수가 된 느낌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1년 동안 그림만 그렸다. 오픈하고 나니 허전하다. 빨리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런데 작업실에 있는 작업 도 구를 다 여기다 가져다 놔서 문제다(웃음).

매일 그리지 않으면 불안한가? 다작을 하는 작가로도 유 명하다.
뭔가 그리고 싶으면 스케치라도 가볍게 해야 직 성이 풀린다. 이런 습성을 고치긴 해야 한다.

거침없이 대담한 화풍이 인상적이다. 이국적인 느낌도 들 고. ‘김희수 스타일’이라는 말도 생겼을 정도로 화가로서 자기 색이 분명하다.
사진을 하다가 서른 살 때부터 그림을 시작했 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거나 그렸다. 친구들 얼굴, 바닷가 풍경 등 보이는 대로 그렸다. 사실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 각했다. 그래서 더 많이 그릴 수밖에 없었다(웃음). 그러 다가 점차 자연스럽게 지금의 스타일이 확립된 것 같다.

작년에 이어 올해 개인전도 타이틀이 ‘Normal Life’다.
나는 그냥 일상을 그리는 화가다. 심오한 메시 지나 추상적 사고 같은 것들보다는 지금의 내 감정, 우리 들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싶다. 그림에 멋 부리지 않고 싶다. 그래서 ‘노멀 라이프’라는 타이틀은 화가로서 나에 게 중요한 테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자다. 특별한 이유라도?
내가 생각하는 미학에 가까운 피사체가 여성이 기 때문이다. 우울한 감정을 기괴하게 표현하기보다 아름 다운 인물의 초상으로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 그림을 그 리기 전에는 어느 정도 의도를 가지지만, 그림이 완성되 는 순간 그 의미와 대상은 싹 사라진다.

왜? 그래서 작품마다 타이틀도, 주석도 없는 것인가?
설명을 하는 순간 내가 생각하는 의미를 그 사 람한테 밀어붙인다고 여겨져서 되도록이면 말을 안 하고 싶다. 대신 동시대 사람들이 나 같은 경험을 해봤겠지, 라 는 약간의 믿음을 가지고 작업한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 니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를 바라면서 그린다. 조금 불친 절하고 건방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건 그냥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고 싶다.

드로잉 종이, 메모들을 벽에 한가득 붙여놓은 방이 인상 적이다. 혹시 기록에 대한 강박이 있나 싶었다. 그중에서 어머니가 선물로 주셨다는 고은의 시집 속 글귀가 눈에 띄었다.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당신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구절이겠지?
맞다. 평소에 기억해야 할 것들은 꼭 적는 습관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때 모티프가 되는 글, 메모가 스케 치로 이어지거든. 솔직히 강박적으로 드로잉을 한다. 서 른 살 때부터 그림을 시작해서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 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영감을 찾을 시간도, 여유도 부 족했다. 그래서 기억, 나에 대한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영감이 오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드는 생각이 있다면?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한 판단도 스스로 해야 하 는데, 내 눈에 엄청 예뻐 보이다가 그 반대일 때도 있다. 과연 내가 바라보는 시각이 맞을까 하는 고민도 들고. 요 즘은 그걸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이 그 리는 그림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내버려두려고 한다. 이 런 그림, 저런 그림 다 보여주고 싶다. 작품을 숨겨놓거나 골라서 보여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모티콘이 때로는 긴 말보다 더 확실하게 감정을 표현 하는 시대다. 디지털이나 SNS 매체를 무시하지 못하는 시대인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이런 시대적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장점, 아니면 독?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쪽에 그 어떤 루트, 인 맥도 없었지만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 내 그림을 보여줄 수 있었던 계기도 SNS 계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화가가 그림을 그려도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 한정적인 데, SNS에 올리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보내준다.

예술가로 사는 삶은 어떤가? 그림이 잘 팔리는 일도 중요 하지 않나?
처음에 그림을 시작했을 때 부모님께서 “넌 굶 어 죽을 거다” 하면서 만류했다. 하지만 안 굶어 죽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물론 큰돈은 못 벌지만 행복하다. 나 를 비롯한 다른 예술가들은 속으론 다 알면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안돼, 예술가는 힘들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투덜거릴 시간에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 로 돈을 많이 벌어서 돈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목 표가 있다. 그런 믿음이 있고,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들 시장에 대한 어느 정도 분위기는 체감하고 있을 거 라고 생각한다.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것을 하고 싶다.

팝 아트?
그렇다. 대학 졸업할 때쯤 한국에 대중 미술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봐도 대중적인 미술이 없더라. 지금의 대중 미술은 웹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팝적 인 요소를 넣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중도를 지키고 싶다.

앞으로 새롭게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곧 책이 나온다. 스케치 작업들과 일기 같은 짧 은 메모들이 들어 있는 그림책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사람들이 내 책을 고이 모시기보다는 낙서장처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엽서 250장이라고 생각하고 막 찢어서 누구한테 편지도 쓰고 벽에 붙이기도 하고 그렇게 자유 롭게 활용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화가 김희수의 꿈은 무엇인가?
‘좋은 그림’을 그리겠다는 막연한 꿈보다는 현 실적으로 대한민국 미술 교과서에 내 이름이 실렸으면 좋겠다. 그날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대중 회화를 그 리는 김희수가 되고 싶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평범 한, 보통의 일상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다.

방금 한 말 멋진 것 같다.
‘2017년의 내 모습과 거리들, 감정을 기록하는데 이게 예술이 아니고 뭐야. 이 시대를 기록하고 있으면 나 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거니까 기록의 의미로서만 봐 도 넌 예술이야’라고 적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120 1 김희수 작가의 메모와 드로잉 스케치북. 모두 작업에 영감을 주는 것들이다. 2 무표정한 그림 속 인물들. 3 채색을 마치지 않은 미완성 작품도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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