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 VS. LEE

피처 에디터 최지웅과 패션 에디터 이종현이 글로 쓰는 같은 이슈 다른 내용, 이른바 '최대리'. 편집장은 매달 이들의 한판 승부를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넘긴다.

CHOI VS. LEE
CHOI VS. LEE

Featuring Bom Lee

톰 포드는 디자이너다. 또한 <녹터널 애니멀스>란 자신의 두 번째 영화를 전 세계에 선보인 감독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천재의 모습이다. 두 명의 에디터들이 나란히 그의 영화를 본 후 감상평을 쏟아냈다. 나는 이들에게 입이 아닌 글로 쓰라고 했을 뿐이다.

CHOI VS. LEE

Text Ji Woong Choi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로 시작하는 저 유명한 시인 기형도의 시구절을 이따금 내 귀만 I rock Tom Ford 들을 수 있도록, 내 몸안에서만 울릴 수 있도록 작게 소리 내어 읊는다. 이유 없이 쓸쓸한 마음이 들 때 위급한 주문을 외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누군가 따뜻하고 묵직한 손으로 등을 두드려준 듯 체기가 가시곤 한다. 내게 기형도는 그런 존재다. 그는 종로 3가 낙원상가 아래 파고다극장에서 심야 영화를 보다가 영화처럼 영원히 잠들었다. 포르노를 틀어주는 단관 극장이었다. 서울의 고독한 시인은 인사도 미련도 없이 문득 증발해버린 거다. 디자이너 톰 포드의 이름을 듣고 살긴 했지만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할 계기는 없었다. 그의 욕망과 취향이 담뿍 담긴 옷이든, 화장품이든, 향수든 어쨌든 그것들을 소비하기에 나는 어렸고 그 정도의 호기로운 사치를 부리며 사는 법도 알지 못했다. 패션 키즈인 친구가 라프 시몬스니, 에디 슬리먼이니 하는 이름을 신처럼 뫼실 때 나는 극장에 있었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하게 선한 일이었고, 어둡고 퀴퀴한 극장에 숨어들면 고달픈 생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행복하다’는 마음을 먹기에 충분했다. 나는 영화를 경배했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와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2010년이었나 디자이너 톰 포드가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신도 알고 있듯 그 영화의 제목은 <싱글맨>이다. 나는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경멸했는지도 모른다. 돈과 명예를 다 가진 잘나가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영역에서 더 오를 곳이 없어졌을 때, 영화나 한번 만들어보는 일은 그의 경력에 꽤나 근사하고 유리한 외도일 수 있다. 톰 포드의 진심과 상관없이 그 욕망에 밥맛이 떨어질 뿐이었다. 아무리 잘 만들어봤자 그저 그런 패션 카탈로그처럼 보일 거라 오해했다. <싱글맨>을 본 건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흐른 어느 취한 밤이다. 모자란 취기 덕분에 나른했지만 잠들지는 못했다. 과하거나 추잡하지 않은 퀴어 영화 한 편이 보고 싶었고, 불현듯 생각난 게 톰 포드의 <싱글맨>이다.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영화를 본 것 같다. 처음에는 시시했다.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슬로 모션과 현악, 중년 남성의 명상적인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왕가위를 그대로 베낀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민망할 정도였다. 이 영화의 모든 것. 사람, 옷, 집, 이미지, 음악은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운 영화에 관해서는 나, 좀 일가견이 있다. 그런 영화를 찍고자 할 때 그저 예쁜 것만 보여주는 건 초보의 짓이다. 사람들이 흉하고 되바라졌다고 여기는 것들이 느닷없이 끼어들어 넓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움이 섞여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아름다움은 몽롱하게 만드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만 불편함이 섞인 아름다움은 의식을 명확하게 깨워 보는 이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 <싱글맨>이 영화로서의 기품을 성취했다면 그건, 자기애가 강한 탐미주의자가 갖게 마련인 괴팍한 마음과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도 여전한 성욕, 이웃을 향한 혐오 같은 인간의 속물성을 위장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여서일 것이다. <싱글맨>을 처음 본 날과 비슷한 어떤 날, 취했거나 쓸쓸한 마음이 엄습하는 밤이면 기형도의 시구를 꺼내 읽듯 톰 포드라는 탐미주의자의 영화를 떠올리거나,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톰 포드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싱글맨>처럼 두 번째 장편도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는데, 오스틴 라이트의 <토니와 수잔>을 기본으로 <녹터널 애니멀스>를 만들었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여성들이 발가벗고 춤추는 느린 화면으로 문을 연다. 수잔(에이미 애덤스)은 오래전 이혼한 남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가 보내온 소설책을 받는다.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 문득 이 책을 읽어내리던 그녀는 소설의 주인공 토니(제이크 질렌할)가 겪는 끔찍한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내 책의 내용이 자신과 에드워드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러니까 이건 권태에 빠져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수잔에게 에드워드가 던지는 균열로 시작하는 영화다. 과거와 현재, 소설 속 이야기를 넘나드는 액자 구성을 취하는데, 오스틴 라이트의 소설 제목이 영화의 소설 속 주인공 ‘토니’와 현실의 여자 ‘수잔’이라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촘촘한 스릴러의 형식을 빌리는 동시에 작가인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떠난 연인 수잔에게 자기 식대로의 복수를 감행하는 복수극이다.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잔과 바위틈으로 플래시 불빛을 피해 숨는 토니의 모습은 ‘야행성 동물’ 그 자체다. 수잔은 복수의 대상인 걸 알면서도 행복과 거리가 먼 지금의 삶에서 토니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연민을 느낀다. 영화의 마지막, 수잔은 그린 컬러의 드레스를 입고 에드워드를 기다린다.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에드워드가 나오는 장면은 모두 과거의 것이었다. 그는 애초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톰 포드는 <녹터널 애니멀스>를 통해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사람을, 사랑을 쉽게 버리지 말라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이 영화는 거친 육체,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 복수를 상징하는 이미지와 소리가 압도하지만 결국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인물의 황량한 몸짓을 비춘다. 첫 영화 <싱글맨>과 다름없다. 톰 포드는 그의 생과 작업에서 줄기차게 천착했던 사랑에 관한 질문을 다시 우리에게 던진다. 그 근간에는 모순적이게도 고독한 심정과 행복을 향한 욕망이 동시에 자리한다. 그는 부자이고, 유명하며, 남편과 아이도 있다. 더 바랄 것 없는 삶일 텐데 나는 그의 얼굴에서 어떤 식으로든 고독과 불안, 결핍 같은 정서를 발견한다. 그의 고통이 영원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기꺼이 톰 포드 당신에게 기댈 것이다.

CHOI VS. LEE

Text Jong Hyun Lee

지난 1월호에서 영화 잡지 <아노>의 편집장 한동균의 질문지에는 영화감독 톰 포드의 영화를 아는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번 달에 만난 김대환 감독의 인터뷰지에도 톰 포드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본 적이 없다’라 답했다. 톰 포드는 자신의 데뷔작 <싱글맨>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고, 두 번째 작품 <녹터널 애니멀스>는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20세기 끝자락에 구찌에 가져온 영광으로 굳이 그를 포장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는 이제 어엿한 ‘영화감독’이 되었다. 2017년에 내가 만난 두 명의 영화인은 톰 포드를 몰랐지만 톰 포드는 영화인이 맞다. 영화 <싱글맨>에서 톰 포드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이력을 숨기기보다 여과 없이 자신의 출신을 드러냈다. 시종일관 매료되는 격이 다른 미학의 영상미부터 생물학적으로나 대외적으로 패션과 아주 밀접한 배우 콜린 퍼스와 니콜라스 홀트를 캐스팅해 영화 속에서 패션을 노골적이며 이상적으로 완성했다. 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 것인지까지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듯한 캐릭터들의 패션과 스타일은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잠깐 스쳐가는 단역에도 빈틈없이 이어져 우리의 시선을 바쁘게 만든다. 이 영화가 연출, 미술, 내러티브 등 기술적인 평가와 별개로 반드시 봐야 하는 ‘패션’ 영화로 구분되는 이유는 단지 감독이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영화 속 패션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2017년 1월 12일, <녹터널 애니멀스>가 개봉됐다. 톰 포드의 차기작에서 온전히 <싱글맨>의 패션을 기대했던 이라면 발걸음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그 실망감이 상당할 테니 말이다. 톰 포드는 데뷔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을 완성했다. 영화와 패션을 완벽하게 구분했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꼬리표를 온전히 떼어내고자 했다. 이 영화가 <싱글맨>처럼 패션 영화로 추천되는 일은 절대 없을 만큼.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이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변함없는 사실과 의상 감독이 아리안느 필립스(Arianne Phillips)라는 것은 이 영화 속 패션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미 <싱글맨>에서 한 차례 호흡은 맞춘 둘은 공통적으로 클래식하고 럭셔리한 남성복에 확고한 취향과 기준이 있다. 영화 <싱글맨>의 빼어난 남성복을 보며 톰 포드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결과물은 톰 포드와 아리안느 필립스의 반복된 대화와 고민 끝에 아리안느 필립스가 이탈리아의 장인과 함께 완성한 것이다. 게다가 아리안느 필립스가 <킹스맨>의 의상 감독이자 영화 속 코스튬을 실제로 편집 숍 Mr. Porter에서 직접 판매까지 했다는 이력을 상기한다면 그녀가 담당한 영화 속 패션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가 아닌 영화감독 톰 포드와 작업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아리안느 필립스는 <녹터널 애니멀스>의 의상을 작업하며 톰 포드로부터 그의 아틀리에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영화 속 수잔(에이미 애덤스)의 의상 일부가 톰 포드의 아틀리에에서 완성되기도 했지만 톰 포드의 태그가 달린 의상은 물론 특정 브랜드의 의상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모두 직접 디자인했다. 앞서 <녹터널 애니멀스>는 철저히 패션을 배제했다고 했지만, 톰 포드 그리고 아리안느 필립스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바라보면 재밌는 구석이 여럿 있다. 수잔이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에게 준 소설을 읽을 때마다 쓰는 검정 뿔테 안경은 우리가 익히 아는 톰 포드의 아이웨어(또는 광고)와 <싱글맨>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안경 쓴 콜린 퍼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뿐만 아니라 셔츠를 입고 등장하는 첫 시퀸스 이후 흰 티셔츠에 데님 팬츠, 앵클부츠를 신고 나오는 레이(애런 존슨)의 스타일은 <싱글맨> 중반부에 콜린 퍼스와 마주하는 창남(남자 매춘부) 존 코르타자레나의 패션과 꼭 닮았다. 또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가장 훌륭한 스타일을 선보였으며 유일하게 갖춰진 복식을 입은 바비(마이클 섀넌)는 코듀로이 소재의 재킷 또는 웨스턴 요크 재킷에 웨스턴 셔츠, 부츠 컷 팬츠 그리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전통적인 텍사스의 패션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텍사스 출신의 톰 포드가 개인의 기억을 영화 속에 투영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실제로 영화의 스틸 컷을 보면 바비의 패션과 꼭 닮은 스타일로 디렉팅을 하는 톰 포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패션이 영화 안에서 소설과 실제를 구분하는 장치로 활용되는 부분은 바비의 패션을 단지 전형적인 텍사스 복식으로 바라보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수잔이 소설을 받아보는 장면에서 에디 슬리먼의 르 스모킹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고, 너무나 뜬금없이 꼼데가르송의 아웃핏이 연상되는 패셔너블한 옷을 입고 등장한 지나 말론에 깜짝 놀라기도 하는 등 지극히 개인적인 흥미를 느끼는 소소함도 있었다. 톰 포드가 약 7년 만에 신작을 들고 나왔다. 그의 세 번째 작품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톰 포드의 영화라면, 그리고 아리안느 필립스와 함께한다면 주제가 ‘좀비’일지라도 나는 어김없이 그가 만든 영화의 패션과 복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제이 지가 “I rock Tom Ford(나는 톰 포드를 입지)”를 외쳤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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