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미끼 아닌 미끼.

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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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시몬스의 2001 F/W 카모 봄버 재킷을 입은 카니예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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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ng Hy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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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이른 오전의 이태원. 불금에서 불토로 이어지는 주말도 아닌데 출근길에 사람이 가득하다. 새롭게 출시되는 운동화를 구매하기 위해 나이키 매장 앞에서 꼭두새벽, 아니 전일 초저녁부터 노숙을 감행한 이들이 추첨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맞은편의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매장의 사정도 얼마 전까지 다를 바 없었다. 나이키 매장 이상의 줄을 아디다스 매장 앞에 서게 만든 장본인 카니예 웨스트가 자신의 디자인에 열광하는 팬들을 위해 상당히 합리적인 온라인 추첨 방식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이지부스트 발매 날마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의 매장 앞은 어김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다. 이들이 스포츠 매장 앞에서 밤을 꼬박 새우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한정된 수량으로 판매되는 신발을 가지기 위해, 또는 구매해서 다시 판매하기 위해서다.
요즘 가장 핫한 브랜드 베트멍 또는 발렌시아가, 고샤 루브친스키, 구찌의 신상품이 처음 판매되는 당일 해당 브랜드의 매장이든 바잉을 진행한 편집 숍이든 그 앞이 시끌벅적한 일은 거의 없다. 물론 10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대의 의복과 20만~30만원 하는 신발을 두고서 단편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이런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이 판매하는 아이템이 컬렉터들의 구미를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송에서 리미티드 에디션(특히 나이키의 조던 시리즈와 같은 스니커즈류)을 모으는 컬렉터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과거와 비교해 현재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정확한 문구를 통해 공표를 함으로써 결정되기도 하지만, 지금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할 때 자연스럽게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불린다. 더불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가진다는 보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 가치의 기준은 돈이다. 이렇듯 리미티드 에디션의 가치는 가격으로 결정된다. 100만원 가까이 주고 산 베트멍의 후드 티셔츠와 구찌의 퍼 트리밍 로퍼가 며칠 사이에 200만원, 300만원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이들 브랜드가 컬렉터들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물질적 가치가 상승하지 않으면 희소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만원 조금 더 주고 산 이지부스트는 하루 만에 100만원에 판매된다. 그리고 2009년에 카니예 웨스트가 나이키와 손을 잡고 선보인 초기 이지 시리즈(2009년과 2012년, 2014년에 두 차례 선보인 에어 이지)는 경매 사이트에서 수백만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 매겨져 있으며, 최근 큰 인기를 끈 피어 오브 갓(Fear Of God)과 반스의 협업 스니커즈는 현재 400달러(발매가는 1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발매가와 비교해 몇 배나 올라버린 현재 가격 때문에 리미티드 에디션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수집하는 컬렉터는 그저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인물로 퇴색되었다. 그러나 그 비싼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재력을 지닌 이에게는 더 이상 리미티드 에디션의 개념도 무의미하다. 수백억원대의 자산가가 정말 가지고 싶은 신발 한 켤레에 수백만원을 지불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손해와 피해는 결국 그 정도의 재력이 없는 ‘우리’들만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진정한 의미의 리미티드 에디션과 컬렉터가 있다.
약 2년 전 보머 재킷이 패션 신에서 핵심 아이템으로 막 떠오르던 시절,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랩 스타와 팝 스타가 당시 어느 브랜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카무플라주 패턴의 보머 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카니예 웨스트와 리한나가 입은 의상은 2001 F/W 시즌에 판매된 것으로, 약 15년 전 라프 시몬스가 자신의 컬렉션에서 선보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카니예 웨스트와 리한나가 입은 의상이 개인 소장품이 아니라 컬렉터 데이비드 카사반트(David Casavant)의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이슈가 되었다. 수백억원을 버는 가수가 개인 컬렉터로부터 옷을 ‘빌려’ 입은 것이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진정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소유한 카사반트는 라프 시몬스(라프 시몬스의 질 샌더를 포함한)와 헬무트 랭의 옛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디올 옴므, 캘빈클라인, 미우미우, 톰 포드의 구찌 의상(특히 구찌의 2004년 광고에 등장한 슈비니어 재킷) 등을 수집한다. 더불어 자신이 수집한 의상을 지속적으로 카니예 웨스트와 리한나에게 대여해주었고, 래퍼 트래비스 스콧과 각종 매거진에도 자신의 아카이브를 제공했다. 본인이 입기 위해 수집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 옷을 소화하는 방식에 궁금증을 느끼며 흥미롭다고 말하는 카사반트는 라프 시몬스와 헬무트 랭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어느 인터뷰어의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가 이만큼의 아카이브를 수집할 수 있었던 동력이 여기에 있다. 진심으로 그 가치를 이해해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 진짜 컬렉터의 모습이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다.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라프 시몬스의 아카이브를 수집한 덕분에 그의 옛 컬렉션들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발매가를 훨씬 웃도는 가격에 현재 거래되고 있다. 게다가 물질적 가치의 상승 때문에 라프 시몬스의 옛 컬렉션에 대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그가 초창기 컬렉션부터 꾸준히 안고 갔던 오버사이즈 실루엣, 거리 문화로부터의 영감 등이 지금의 흐름과 꼭 맞기 때문이다.
한정판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값지고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클릭 몇 번이면 누구라도 하루아침에 30만원짜리 신발을 90만원에 팔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신발을 소유하고 있다고 진정으로 행복할까? 유년 시절의 전설과도 같았던 ‘나이키 덩크 SB 하이네켄’과 ‘언더커버 85 데님’, ‘타카히로 미야시타의 넘버나인 컬렉션’,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 컬렉션’, 가장 존경하는 ‘레이 카와쿠보의 꼼데가르송 컬렉션’을 소장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나에겐 진정한 의미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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