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Swiss, Typography

뉴욕 패션 위크가 한창인 2월 초, 조용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캘빈클라인’ 로고를 두고 패션계가 술렁였다. 타이포그래피의 가치가 높아지는 이 시점, <스위스에서 파리까지–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전시의 큐레이터이자 전시를 위한 책 저자인 바바라 주노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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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아름답게 표현한 스위스 서체 디자인은 공항 시스템에 널리 전파되어 있고, 파리 내 주요 랜드마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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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는 인쇄물을 위한 디자인 작업에 널리 활용되지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전하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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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정신을 담아 발표했다’는 캘빈클라인의 새로운 로고는 흰 배경에 브랜드명이 전체가 대문자로 표기된 심플한 검은색의 글씨체. 그래픽 디자이너계의 거장 피터 새빌(Peter Saville)이 작업한 이 로고가 등장한 배경에 라프 시몬스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상 브랜드가 새로운 전환점을 갖고자 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활용될 수 있는 것이 타이포그래피다. 그렇기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를 맞은 캘빈클라인에게는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의 기류 속에, 최근 스위스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Museum für Gestaltung)에서 한창인 하나의 전시가 눈길을 끈다. <스위스에서 파리까지–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라는 제목으로 열린 전시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파리로 진출한 스위스 아티스트들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다. 전시의 큐레이터이자 전시를 위한 책 저자인 바바라 주노드(Barbara Junod)와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메이드 인 스위스’ 정신이 파리에 정착해 당시 패션 브랜드들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며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소개한다. 현재의 역사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다.

당신은 스위스 그래픽 디자이너는 물론 그래픽 디자인 에 대한 다양한 책의 저자라고 알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배경은 무엇인가?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이 최근 파리에서 활동한 스위스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에이드리언 프루티거의 아카이브를 소장하면서 기획하게 되었다. 프루티거는 파 리 메트로는 물론 샤를드골 공항 등에 ‘사인’으로 채택되 며 전 세계 공항 시스템의 기본 서체로 확장되는 쾌거를 이룬 20세기의 탁월한 서체 디자이너다. 그 외에도 수많 은 스위스 디자이너들이 1950년대와 1960년대 파리 황 금기에 그곳으로 이주하여 활동했는데, 그중에서 주요 인 물로 급부상한 피터 냅과 장 위드메르의 많은 작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빠른 시간 안에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과 <엘르> 매거진의 아트 디렉터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이후에 퐁피두 센터와 오르세 박물관 등의 사 인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수많은 기업 아이덴티티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많은 작업들을 남겼다.

이들이 스위스를 떠나 파리에서 작업하고 주요 위치까 지 오르며 영향력을 미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나도 그 점에 초점을 두고 전시를 기획했다. 놀 랍게도 그들은 서체를 통한 사인 작업에 그치지 않고 지 도 제작, 광고, 영상 아트, 패션 디자인 그리고 필름에 이 르기까지 종합예술을 섭렵한 아티스트였다. 이들은 아티 스틱한 영감을 좇아 파리로 향한 것이고, 스위스의 기성 세대와는 달리 파리는 이들의 새로운 감성을 두 팔 벌려 반겼다. 스위스 디자이너들은 특히 당대의 예술 트렌드인 옵티컬 아트, 팝 아트 그리고 뉴웨이브 등을 반영한 ‘스위 스 스타일’로 파리 기업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럼 전시에도 이들의 작업이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등 장하나?
물론이다. 22명의 주요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8 가지의 주제 아래 소개되는 전시에는 다양한 장르가 등 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디자이너들의 작업에는 당시 파리의 활력과 삶에 대한 열정,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라 이프스타일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흥미진진한 환경이 무 던히 묻어나는 시각과 흔적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작업을 신선하지만 무척이나 ‘파리다운’ 모습으 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의외로 당시 파리는 아방가르드하고 창의적인 포스터 아트만 존재할 뿐 디자 인에 있어서는 노후되어 있었다. 스위스 디자이너들은 기 업을 상대로 한 프로젝트 외에도 학교를 통해 교육에 관 여하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스위스와는 달리 파 리에는 국립 예술 대학교가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이다.

스위스 디자인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들었다. ‘메이드 인 스위스’를 이토록 강력하게 하는 원천은 무엇 인가?
스위스 그래픽 디자인에는 그만의 특징들이 있 다. 먼저, 개념적으로 디자인에 접근하기 때문에 ‘정확하 고 신속하게’ 소통해야 하는 대기업들의 필요를 충족시 켜주는 작업이다. 또한 스위스 디자인을 연구하다 보면, 인쇄술에서 사용하는 종, 획의 명확한 틀 안에서 이미지 와 텍스트를 구성하는 산세리프체(고딕체와 같이 꾸밈이 없는 서체)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좌측 정 렬과 달리 우측은 들쑥날쑥하게 문단을 마무리하며, 추 상적이고 축소적인 모습을 고집하는 방식이 무척 간결하 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 작업 형태다. 그래서 늘 정보 를 전달해야 하는 사인 시스템이나 열차 혹은 항공 시간 표, 지도 제작, 정보 그래픽 등에 사용된다.

사실 직접 작업을 보지 않으면 쉽게 와 닿지 않는 만큼, 패션 안에서는 이런 스위스 디자인 특유의 개성이 어떻게 다뤄졌는지 소개해줄 수 있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전달하고 소통해야 하는 ‘임무’가 무척이나 복잡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작업에 접근한다. 그 결과 이 이성적인 접근에 의한 표현이 다채 로운 그래픽 디자인의 트렌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포 스터나 북 디자인, 그리고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 그대로 표출된다. 더 나아가 이런 현상은 디지털과 아날 로그 디자인에서도 드러난다. 기술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젊은 디자이너들이 손으로 작업하는 과정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며, 그들이 작업하는 구조물을 직접 만지고 재료들 의 냄새를 맡고 싶어하는 그런 감성이다.

패션을 인지하는 데 있어 그래픽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픽 디자인은 패 션 트렌드와 무관할 뿐 아니라 그 트렌드에 도전하는 질 문을 던지거나 그것을 역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 흥미롭 다. 디자인계에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무척 ‘못생긴’ 혹은 ‘흥미롭지 않은’ 드레스를 아주 잘 찍은 사진과 그 걸 뒷받침해주는 트렌디한 그래픽 디자인 레이아웃으로 작업하면 그 드레스를 실제보다 훨씬 재미있게 보이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얘기다. 결국 누구나 알 수 있는 시각에서 살짝 벗어나 제시하는 그 새로움이 패션계가 회전하면서 영속 할 수 있는 원천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로 다양성 이 공존했던 그 당시 파리의 아티스틱한 환경 속에 스위 스 디자이너들의 재능과 능력이 결부돼 좋은 작업들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해외로 진출해 그곳의 삶 에 녹아든 스위스 디자이너들의 인생이 궁금하다. 이들에 게 ‘외국인’으로 작업하는 환경은 어땠을까?
스위스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환경은 그들이 생 각하고 소통하며 작업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방인 으로서 국제적인 문화 안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동안 그 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공동의 언어’를 창의적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래픽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규격화된 전자 장비는 하나의 공통 베이스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는가는 완전 자유에 맡길 수 있다. 그건 철저히 디자이너들이 어떤 메시지를 누구와 어떻게 소통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에 따라 기획 되는 것이다. 프루티거부터 그다음 세대의 젊은 디자이너 들까지, 파리로 이주한 스위스 디자이너들에게는 그런 작 업에 대한 욕구가 풍성해진 환경이 열린 것이다.

스위스 디자이너들에게는 유난히 풍성한 디자인 감성이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유산 뒤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라도 있는 것인가?
스위스는 부유한 나라이고 좋은 교육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는 재능 있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배경이 되어주고, 전문가들에게는 그들의 노하우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게다가 이 작은 나라에는 오랫동안 전통을 이어오는 예술과 공 예에 대한 역사가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상업적인 압력에 도 불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높은 퀄리티의 작업을 중요시하는 중소기업들, 인쇄업이 많이 실재한다.

마지막으로, 최근 들어 전 세계를 강타한 소셜 미디어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누구 나 사진가가 될 수 있으며, 휴대전화로 그 사진을 편집하 거나 디자인할 수 있는 세상이다. 당신에게 이건 어떤 의 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소셜 미디어는 물론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업 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두가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현상은 디자이너들은 물론 ‘좋은’ 디자인을 사랑 하는 많은 이들에게 무척이나 현실적인 도전이다. ‘좋거 나’, ‘나쁘거나’는 사회 공동체가 정하는 기준에 따라 결 정되기 마련인데, 지금은 더 이상 이를 ‘심판할 상급 기 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흥미로운 시점이자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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