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of Living

사랑하고, 저항하고, 노래하라.

Art+Culture Anohni
Act of Living
Act of Living

Text & Artwork Hwa Young Park

Act of Living

지난 2월 28일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댄스 &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을 수상한 키라라는 소감을 밝히며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가만히 턱을 괴고 흐뭇하게 지켜보던 나는 머리를 세게 탁 하고 얻어맞은 기분과 함께 울컥하고 눈물을 쏟았다. LGBTQ 뮤지션인 키라라의 연대와 지지, 그동안 친구들과 주변 성 소수자 아티스트들의 고난을 알고 있었던 만큼, 이보다 더 강력하고 아름다운 한마디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캐치프레이즈 ‘키라라는 예쁘고 강합니다’처럼.
작년 다양한 매체에서 선정한 연말 결산 리스트 상위권은 대부분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여성에 관한 앨범들이었다. 흑인 여성으로서 경험해온 서사가 각 앨범에서 다른 온도로 각각 강력하고 차분하게 담긴 비욘세와 솔란지의 앨범부터, 흑인 퀴어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노래한 블러드 오렌지와 사회적 이슈에 대해 날 선 경고를 보내는 아노니까지. 미디어에서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작년 한 해 다양하게 다루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자면, 작년 한 해 역시도 억압과 폭력의 칼바람이 그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미국 내 흑인 사망,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 트럼프의 대선 승리, 그리고 최근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무차별적 살인과 폭행, 심지어는 뮤지션 미키 블랑코가 델타 항공기에서 겪은 어처구니없는 젠더 차별까지. 이렇듯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성 소수자의 입장에 선 아티스트들은 단순 아티스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차별 문제에 대해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그 심각성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음악이든 운동이든 어떠한 형식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비욘세로 인해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확산되었고, 트럼프가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와중에도 아노니는 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LGBTQ들 중 음악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거나 성 소수자 사회를 음악으로써 보듬어주는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ANOHNI
아노니의 이번 앨범은 꽤 흥미로우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현재 전자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으며 아노니의 과거 프로젝트 그룹인 ‘ 앤서니 앤 더 존슨스(Antony & the Johnsons)’의 체임버 팝과는 전혀 다른 장르, 익스퍼리멘탈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인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와 허드슨 모호크와의 공동 프로듀싱이라니.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연말 결산 리스트에 올라갈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 결과로 나온 앨범 <Hopelessness(절망)>는 정말이지 그녀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일렉트로닉 앨범”이라고 칭한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날카롭고 직설적이며 차가운 앨범이다. 노골적으로 전면에서 정치, 사회, 환경 문제 전체에 대해 앨범 하나로 비판하는 아티스트가 최근 없었던 것도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다. 특히 트랙 ‘Obama’와 관련해서는, 미군 관련 문서를 위키리크스에 유출시켜 현재 수감 중인 트랜스젠더 첼시 매닝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현재는 사면 조치가 내려져 35년형에서 8년형으로 감면되어 오는 5월 17일 석방 예정이다). 첫 트랙 ‘Drone Bomb Me’는 범죄 조직의 드론 악용과 치안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Watch Me’는 사생활 침해와 감청과 민간인 사찰 등 국내 이슈와 연관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앨범은 범사회적인 곡들로 가득하다.
이 앨범이 동시대성을 지닌다는 것 외에 과연 10년, 20년, 수십 년 뒤에 이 앨범을 들었을 때에도 지금만큼의 울림이 존재하겠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 있게 맞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인류가 직면한 영원히 풀지 못할 문제를 노래하고 있기에, 또 우리가 외면해왔던 현실에 민감하기에. 성공적인 솔로 데뷔 이후 앨범 <Hopelessness>와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발매 예정인 EP 앨범 <Paradise>와 선공개 트랙 ‘Paradise’에서도 알 수 있듯, 아직 아노니의 분노와 투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제목에서 역설하고 있다.

BLOOD ORANGE
흑인 사회에서의 퀴어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지는 위협과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해 결속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에서 LGBT 구성원들의 자리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해 블러드 오렌지는 ‘Better Than Me’라는 트랙에서 이렇게 말한다. “99%, 난 네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 이제 모두가 실수로 친절해질 수 있어.”
아버지의 고향인 시에라리온에 바치는 찬사이자 블러드 오렌지의 3번째 앨범인 <Freetown Sound>에서는 ‘too black, not black enough, too queer, not queer the right way’로 불리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상처와 결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성 소수자 사회를 품고 그들을 위로했다. 또한 다양한 흑인 문학과 음악을 샘플링하면서 직접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현재까지도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가 얘기했듯이 정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 주제인 만큼, 그것들을 이야기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이 앨범에 대해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다양한 여성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타인이 바라보는 본인의 정체성, 그리고 그가 가지지 못하는 감수성에 대해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블러드 오렌지와 여성 화자들은 때로는 화자, 때로는 사건의 관찰자 역할을 하면서 여성 아티스트들의 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본래 그들의 스타일을 그대로 살려냈다. 이를 통해 블러드 오렌지는 본인의 위치와 색깔을 정확히 파악하고 작업했음을 알 수 있다.

PERFUME GENIUS
피아노 사운드가 지배적이던 그의 1, 2집 앨범과 다르게 3집은 사운드의 변화를 물색했고, 성공적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세련된 비주얼과 다양하고 감각적인 의상들의 사용이 돋보였다는 것 외에, 앨범 전체적으로 과감한 베이스와 신시사이저를 사용하였다. ‘I Am a Mother’에서의 흐느끼는 듯한 보컬과 웅장한 신시사이저, ‘Queen’에서의 절규 섞인 목소리와 베이스 리프는 퍼퓸 지니어스가 담는 감정의 위로에 보다 다채로운 색깔을 입혔다. 퍼퓸 지니어스의 3집 <Too Bright>는 블러드 오렌지와 같이 자신의 고통과 과거를 직접적으로 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가사 속에서 주도권을 잡고, 죽음과 본인이 겪는 게이로서의 차별에 대해서 노골적인 비판과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앨범에 수록된 모든 트랙들이 공통된 주제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수록곡 제목 중 하나이기도 한 GRID는 과거 AIDS를 부르던 명칭으로 동성애, 섹스와 함께 앨범의 전체적인 방향을 잡는 모티프가 되었다. 이는 게이 남성들에 대한 대표적인 선입견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에 대해 그는 다소 냉소적이지만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한다. “No thanks.” 퍼퓸 지니어스가 풀어나가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에 관한 사회적 문제들에 접근하는 방식은 성 소수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함께 화낼 수 있는 앨범을 만들기도 한다. 동시에 약물 중독, 우울증 등을 겪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편안함을 주고, 자신감을 심어준다. 다소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아티스트지만, 그 곁에서 사람들은 위안을 찾는다.
뮤지션 제리케이의 말을 변형해 빌리자면, 어떤 시상식에선 수상 소감으로 지구의 기후 변화와 난민 문제를 논하지만, 어떤 시상식에선 자신과 친구들의 생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아티스트들은 당장의 생존까지 걱정하고, 자살하지 못해 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그들을 위해 함께 연대하고 움직일 수 있는 목소리가 있어 가슴을 깊게 울리고, 하루를 더 살아갈 힘을 준다. 질문은 있지만 뚜렷한 정답이 보이지 않는 싸움, 그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도 위안이 되는 것이다.
정말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는, 나중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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