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

내가 제일 불쌍해, 영화감독 김태용.

Art+Culture 김태용
김태용
김태용

Text & Photography Ji Woong Choi

김태용

감독 김태용은 단편 <얼어붙은 땅>으로 2010년 제63회 칸 국제 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국내 최연소로 진출했다. 그 후 몇 편의 단편을 만들었고, 2014년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장편 데뷔작 <거인>을 통해 서러운 소년의 떨림을 전했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여교사>는 욕망과 계급 앞에 무너져내린 자존감에 관한 서글픈 물음을 던졌다. <여교사>는 부당한 대우를 받은 과소평가된 영화다. 이 영화 관련 모든 공식 일정이 종료된 시점, 낯선 동네에서 김태용을 만났다. 카페에 앉아 멋대로 사과 케이크를 주문했더니, 사과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영화 <여교사>가 개봉된 지 2달이 좀 넘었고, 극장 상영 은 마무리되었다. 논쟁이든 열기든 한풀 꺾인 다음 만나 고 싶었다.
몇 달 정신없이 지냈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정 리가 됐으니 영화에 관한 이야기든, 개인에 관한 이야기 든 홀가분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개봉 당시 에는 시달릴 일도 많으니까.

대통령의 파면 결정이 난 직후 통화를 했는데 수화기 너 머 목소리가 밝았다.
다들 그렇지 않았을까? 차마 그 순간을 실시간 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전날 밤 술을 많이 마시고 늦 잠을 자려 했는데, 마침 발표될 때 눈이 떠져서 TV를 봤 다. 강의실이나 여성 단체 사무실 등에서 여러 사람이 모 여 환호하는 영상을 보고 울컥하긴 하더라.

주변의 예술인, 영화인 친구들을 만나면 지난 정권에서는 체감할 정도로 지원은 삭감되고 자유는 침해받았다는 말을 하더라.
신인 감독들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지원을 받아 야 제작이 가능한 실정인데 그런 기회가 많이 닫혀 있긴 했다. <거인>의 제작도 쉽지 않았다. 상업 영화 시스템에 서 보면 내 영화가 특정 정치색을 띠거나 예산 규모가 큰 편은 아니어서 직접 부딪히진 않았지만,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다면 ‘이 나라에서 영화 만드는 일을 계속할 수 있 을까’라는 위기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며칠 전 뉴스에서 소위 ‘청량리 588’이라 불리는 사창가 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곳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다. 당신 영화의 인물과 이곳 사람들이 닮았 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모두 ‘내몰리는 사 람들’로 여겨진다.
부산이 고향인데,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이런 곳 이다. 사창가 안에 학교도 있고, 파출소도 있고, 교회도 있었다. 아침이면 밤새워 일하고 퇴근하는 ‘언니’들과 교 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같은 골목을 오갔다. 오랜만에 그때 생각이 나서 잠깐 묘 한 기분이 들더라.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확인하니 3월 9일 현재 영화 <여 교사>의 최종 관객수가 11만8621명이더라. 손익분기점 을 넘기지 못했다. 이 영화는 감독으로서 대중과의 소통 에 용기를 냈다고 봐야 할 텐데, 결과가 아쉽거나 서운하 지 않나?
세상에, 12만 명을 못 채웠나? 너무하네, 너무해 (웃음). 최근 일본 여행으로 그 아픔을 다 정리하고 왔는 데 다시 끄집어내야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개봉 시기다. 상영관을 너무 못 잡았다. 개봉 첫날부터 아 침이나 밤에만 상영하는 극장이 많았다. 더욱 온전한 환 경에서 영화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있 다.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았지만, 영화는 남았다는 확신은 있다. 김하늘이라는 배우의 전환점이 됐다는 각별함도 크 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든 게 29세였기에 용기 낼 수 있었 다. <거인> 이후 완전한 상업 영화의 시스템에 적응하기 전, 내가 사랑하고 가여워하는 인물상의 모습을 좀 더 보 여주고 싶었다. 얼마 전 DVD 코멘터리 녹음까지 마쳤으 니 이제 진짜 <여교사>를 떠나보내야 한다. (상냥하고 밝 은 얼굴을 지우고 생각에 잠기더니) 사실 자격지심과 싸 우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자격지심?
나는 원래 ‘영화는 영화고 인생은 인생이다’ 이 렇게 분리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둘 이 맞물려서 가고 있더라. <여교사>를 촬영하고 후반 작 업과 개봉 준비, 홍보 일정을 소화하면서 1주일, 한 달 내 내 영화만 바라보는 생활에 지쳐버렸다. 20대 전부를 영 화 만드는 일로 아등바등하며 살았더니 이제 더는 그게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행복과 거리가 있다는 생 각이 스쳤다. 그런 식의 자격지심.

어떤 행복을 바랐길래?
당연한 것들. 좋아하는 사람이 반겨주는 집에 드는 일, 함께 밥 먹고 TV 보는 시간. 그게 너무 사소한 일인데 쉽지가 않더라.

나와 당신은 비슷한 나이다. 최근 우리 또래 남자 배우를 만났는데 그가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흥 미로웠다. 나는 <거인>과 <여교사>를 자존감의 영화로 본다. 자존감이 처참히 짓밟힌 사람들의 얼굴. 그게 참 서 글프다.
<거인>은 자전적인 이야기다. 내게는 ‘가족’이 라는 울타리가 없다. 부모를 안 본 지 10년이 넘었다. 부 모가 심어줘야 할 뿌리를 스스로 심으면서 무의식중에 ‘나 괜찮아. 그냥 내 팔자야. 좋은 부모는 못 만났지만 하 고 싶은 일에 재능은 있으니 됐어’ 이런 주문을 걸고 살았 다.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상처가 있다. 나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그런 가시들이 삐죽삐죽 튀어 나와서 영화로 만들어진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해’ 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애정을 느낀다. 내 영화의 인물 에는 내가 있다. <여교사>의 김하늘이 하는 말과 행동 전 부는 평소의 나와 다르지 않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하나?
당연하다. 세상에서 내가 ‘짱’ 불쌍하다. 불행 배 틀 뜨면 내가 다 이길 수 있다(웃음).

사춘기 시절 어떤 생각을 많이 했나?
14세에 보육원에 들어갔는데 신기하게 그 이전 의 기억이 없다. 내가 살던 동네, 풍경은 선명한데 그 공 간 속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30세까지밖에 못 살 거라 확신했다. 남들이 100세까지 사는 걸 30년에 압축해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31세가 되었고 최근에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건강하다고 하더라(웃음).

당신의 영화에는 늘 위태로운 소년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느 순간 아이처럼 펑펑 운다.
장편 영화 <거인>의 최우식과 <여교사>의 이원 근뿐 아니라 내 모든 단편 영화의 인물이 그렇게 운다. 철 없는 아이들이 자기가 저지른 짓을 돌아보며 털썩 주저 앉아 엉엉 우는 아기 같은 얼굴을 좋아한다. 다르덴 형제 의 영화를 많이 보는데, 그들의 영화 <더 차일드>의 영향 을 받았다.

정작 본인은 잘 우는 편인가?
오래됐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질 않는다. 보 육원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이었는데, 명절이었나 1년 만 에 집에 간 적이 있다. 1년이 지나면 우리 집이 좀 괜찮 아져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더 개판이더라. 도망치듯 나 와서 다시 보육원에 갔더니 “집에 다녀오니 기분이 어떠 니?”라는 질문을 받았고 그 자리에 서서 펑펑 울었다. 그 때 이후로 눈물이 마른 것 같다. 평생 울 걸 그날 다 울어 버렸나.

집, 가족, 그런 게 그립진 않나?
잘 모르겠다. 아직은 혼자인 게 편하다. 뭐 때 되 면(침묵).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살 수 있는 순간 이 생기겠지. 영화 만드는 일보다 일상을 사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호감 가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하는 일, 조건 없 이 친해져서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일이 점점 어렵게 느 껴진다.

사랑 앞에 주저하는 편인가, 용기 내는 편인가?
그런 것조차 생각 못 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럴 여력이 없었다.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가, 나는 내가 부끄 럽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영화감독으로는 ‘고생했 다. 떳떳하다’라는 확신이 있는데, 31세의 평범한 개인 김 태용에게는 아무 자신감이 없다. (침묵) 아, 그런데 오늘 나 너무 이상한 소리를 많이 하는 것 같다(웃음).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감독 김태용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장르 영화, 슬픈 스릴러물을 만들고 싶다. 최근 한국 영화 중 <미씽>을 좋아한다. 장르적 문법에서 취향 이 나뉠 수 있는 작품이지만, 한국 대중 영화에 이주 노동 자나 워킹맘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를 했다는 점 을 지지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고통 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 중이다. 대중에게 한 걸음 더 다가 가는 영화를 고민하고 있다. <거인>과 <여교사> 두 편의 장편 영화가 재산처럼 남았고, 덕분에 알게 된 든든한 사 람도 많다. 그들과 술 취해서 영화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 그게 복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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