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 VS LEE

서울패션위크

CHOI VS LEE
CHOI VS LEE

Featuring Bom Lee

3월 말, 어김없이 서울패션위크가 열렸다. 여자와 남자, 여름과 겨울, 디지털과 프린트의 구분조차 무색해진 지금의 패션계, 서울패션위크의 리뷰는 <데이즈드> 두 에디터의 감회로 대신하려 한다. 쇼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1초 만에 다 찾을 수 있고, 옷에 대한 평가는 고루하고 비루하다.
피처 에디터 최지웅과 패션 에디터 이종현이 글로 쓰는 같은 이슈 다른 내용, 이른바 ‘최대리’. 편집장은 매달 이들의 한판 승부를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넘긴다.

CHOI VS LEE

Text & Photography Ji Woong Choi

쇼가 끝나기 전에

패션이라는 욕망의 전차.

나는 패션 매거진의 피처 에디터다. 인터뷰 혹은 촬영 때문에 만나게 되는 ‘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이들은 내 명함을 받아들고 난감해하는 일이 잦다. 그들 중 얼마는 쭈뼛거리는 태도로 ‘피처 에디터’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묻곤 한다. “패션 매거진의 영역에서 ‘패션’이 아닌 다른 대부분을 두루두루 담당합니다”라는 명쾌하고 모범적인 답변을 내놓으면 대부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리송한 낯빛을 숨기지 못하는 이도 많다.
컬렉션의 프런트 로에 자리 잡는 피처 에디터가 있는가 하면, 에디터의 일생을 다해 컬렉션과 엮이지 않으려는 피처 에디터가 있을 것이다. 나는 전자의 편에 섰고, 시간이 되는 한 2017 F/W 서울패션위크가 열리는 DDP에 자주 기웃거렸다. 서울패션위크에 그렇게 긴 시간을 상주한 건 정확히 10년 만의 일이다. 당시 패션 위크는 학여울역의 세텍(Setec)에서 열렸는데, ‘패션’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멋 없고 거대한 건축물이 공터에 황량하게 서 있었다. 주변에는 제대로 된 식당이나 카페도 없었고, 모델이든 관람객이든 쇼 사이의 빈 시간에는 공터에 앉아 겨우 시간을 때웠다. 세월이 흘러, 서울패션위크는 제 집을 찾지 못하고 용산 전쟁기념관, 여의도 IFC몰, 한남동 블루스퀘어 등을 옮겨 다니는 신세로 몇 개의 계절을 지냈다. 2014년 봄, DDP의 개관과 함께 정착하게 된 지 올해로 3년이 흘렀으니 익숙한 제 집 마당에서 열리는 잔치 같은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로 참석한 서울패션위크에서 나는 확실한 내부자였지만 동시에 철저히 외부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프런트 로에 앉아 ‘패션’을 분석하기보다 ‘쇼’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거나 건너편 프런트 로에 자리 잡은 면면을 관찰하는 일에 집중했다. 사실 그보단 광장을 가득 메운 총천연색 인간 군상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들에게서 야릇한 ‘욕망’의 냄새가 풀풀 풍겼다.
아이돌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훤칠한 모델들이 바삐 지나다녔고 소녀 팬들은 그 모습에 자지러졌다. 아직 유명하지 않은 모델처럼 보이는 이들은 그들을 향해 부러운 눈길을 보냈고, 패션을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괴상한 옷 입기를 즐기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심란해 보이는 이들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카메라 앞에서 거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타인의 관심과 주목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 즐기고 있었다. 이 시대에 패션이란 무엇일까에 관한 얕은 궁리를 하며 그 무리를 피하듯 빠져나왔다.
밤에는 어떤 쇼의 애프터 파티에 참석했다. 한남동의 우아한 레스토랑의 영업 종료 시점에 맞춰 괜찮은 파티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그곳에는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자주 들리는 음악이 흘렀다. 어김없이 공짜 술을 허겁지겁 마셨고 취기가 돌 무렵, 역시 술을 좀 마신 것 같은 쇼의 관계자는 오늘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수줍게 밝혔다. 실제 그 쇼에는 유난히 활기찬 모델들이 런웨이를 멋대로 뛰어다녔으니 어딘가 애틋한 마음이 들기에 충분했다. 마침 그 배는 3년 만에 물 밖으로 나오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봄은 잔뜩 익었고, 배는 다시 땅에 닿았으며 쇼는 끝났다. 서울패션위크를 지배하던 그 많은 욕망은 이제 어디를 향하나.

CHOI VS LEE

Text Jong Hyun Lee

촛불 하나

서울패션위크 그리고 촛불 하나, 둘, 셋.

다들 봄이라고 말하지만 아직은 서늘한, 서늘한 줄 알면서 입은 봄옷 탓인지 온도가 뚝 떨어진 저녁에 너무 추워 욕을 한바탕 뱉어내는 딱 그 시기에 서울패션위크 F/W 시즌은 어김없이 시작됐다. 헤라는 이번 시즌도 서울패션위크의 메인 스폰서로 함께했고, 자하 하디드의 유작이 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복잡한 지리와 화려한 곡선은 이젠 더 이상 복잡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꾸밈이 아닌 거의 변신 수준의 변장을 한 남녀노소도 어김없이 함께했다. 그들은 언제나 서울패션위크와 관련된 칼럼에서 주객전도를 유발하는 불청객이었고, 눈살이 찌푸러질 정도로 과장된 복장이 뿜어내는 불편함은 언제나 서울패션위크의 꼴불견 1순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이 참 반가웠다. ‘진짜 서울패션위크가 시작되었구나’라는 실감을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들의 복장에서 느꼈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많은 인파가 그 어떤 번화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화려함으로 치장하고 동대문에 등장하는 건 하나의 ‘놀이’ 같았다. 그렇게 욕했던 집단 행동이 이젠 하나의 문화가 것이다. 물론,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탓이겠지만. 그러나 이번 시즌에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쇼장 내의 취재 열기. SNS의 영향력이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듯 취재 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프런트 로의 앉은 아이돌을 찍기 위해 10대 소녀는 족히 수백만원을 호가할 것 같은-망원렌즈가 장착된-DSLR 카메라로 나의 뒤통수를 쉴 새 없이 건드렸고, 쇼장 위에 난데없이 등장한 드론은 곱게 손질한 나의 헤어스타일을 망가트렸다. 인스타그램은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새로운 플랫폼인 라이브와 스토리를 안정적으로 구축했고, 덕분에 나는 피날레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은 물론 ‘특별한’ 순간을 컬렉션이 진행되는 15분 안에 ‘반드시’ 포착해야 했다. 해외의 쇼들은 종종 ‘휴대전화 없는 쇼’를 기획하지만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는 누구도 그 행복(?)을 선사하지 않았다. 뭐 이것도 언젠가 하나의 문화처럼 느껴지게 될 날이 올지는 모른다.
이번 서울패션위크는 그 어떤 시즌보다 오프 쇼가 많았다. 공식적으로 서울패션위크 스케줄에 이름을 올린 곽현주, 제인송, 앤디앤뎁, 소윙 바운더리스와 같은 익숙한 디자이너들도 밖으로 많이 나갔지만, 윈도우 00(Window 00), 강혁(KANGHYUK), 더시리우스(The-Sirius)와 같은 신인 디자이너들이 패기롭게 서울패션위크의 마지막 쇼가 열리는 오후 8시에 스케줄을 잡고 쇼를 개최한 게 인상적이었다. 비록 그들의 쇼는 안락한 의자도, 따뜻한 온기도, 전문적인 스태프의 지원도 없이 어수선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순수하게 ‘패션’으로 승부할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한국의 패션은 언젠가부터 싸구려 티셔츠와 스웨트셔츠, 후드 티셔츠에 정체불명의 브랜드 이름을 도배하고, 마케팅이라고는 SNS 팔로어가 많은 이들에게 돈을 쥐여주고 홍보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컬렉션을 개최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쇼와 이벤트를 연출하고, 공간을 대여하고, 척박한 환경 때문에 그 고생을 하고 또 욕을 먹는 그 미련함과 수고스러움이 반가웠으며 고마웠다. 나는 언젠가 서울패션위크에서 샤넬처럼 우주선을 설치하는 기적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이번과 같이, 언제나 작은 희망을 품은 채 다음 시즌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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