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

사진가 양동민의 엄마는 죽었고, 사진은 남았다.

Art+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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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i Woong Choi
Photography Dong Min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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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민은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죽어가는 엄마의 몸과 얼굴을 사진에 담았다. 처음에는 유쾌한 이미지였지만 엄마의 몸이 버석하게 말라갈수록 엄마를 잊지 않으려는 딸의 마음은 처절해졌다. 양동민은 엄마의 숨이 멎는 순간, 울음을 그치고 카메라를 들어 초점을 맞춘 다음 셔터를 눌렀다. 엄마는 죽었고 엄마를 빼닮은 딸은 살았다. 이제 그의 카메라는 엄마와 화투 패를 돌리던 엄마의 친구들에게 향한다. www.yangdongmin.com

사진가 양동민의 작업을 처음 본 건 몇 년 전이다. 중년 여성이 가운뎃손가락을 펴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였다. 보내준 작업에는 3개의 폴더가 있었다.
2012년 사진 학교에 다니며 작업한 ‘졸업작품’과 2015년 아픈 엄마를 돌보며 기록한 ‘마더’,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와 내가 살던 동네를 기록한 ‘자양동’이 있다.

3개의 작업 모두 중년 여성인 ‘아줌마’를 찍었다. 그 얼굴을 피사체로 삼은 이유가 궁금하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아버지와 사별했다. 엄마는 ‘과부’였다. 엄마는, 동네 아줌마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옆집에 모여 화투를 치며 놀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엄마와 아줌마들이 모여 있는 옆집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붙어 앉아서 화투판을 구경하다가 졸리면 낮잠을 잤고, 판이 잘 풀리는 아줌마에게 용돈을 받았다. 그런 생활이 사춘기까지 이어졌다. 사진을 시작하고 뭘 찍어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 아줌마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사람들은 그들을 천박하다 수군거릴지 모르지만 내게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얼굴들이다.

역시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마더’다.
엄마는 활기차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2014년 겨울, 그날도 어김없이 아줌마들과 화투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쓰러졌다. 악성 뇌종양이라고 했다. 의사는 차분한 말투로 곧 언어 장애를 동반한 인지 장애가 올 것이고 1년 이내에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날부터 강박증 환자처럼 엄마의 모든 걸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둔 얼굴을 기록한 사진가는 많다. 당연히 감정적인 이미지가 될 수밖에 없을 텐데, 양동민의 ‘마더’는 아니더라. 마치 ‘놀이’하듯 유쾌한 방식으로 엄마의 마지막 얼굴을 담았다.
엄마의 상태가 악화하면서 죽음을 준비하게 됐다. 그중 하나가 영정 사진을 찍는 일인데, 사진가인 내가 직접 찍고 싶었다. 엄마는 스테로이드제를 장기간 복용해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얼굴과 몸이 퉁퉁 부은 상태였다. 평소 멋 부리기 좋아하던 엄마를 아프고 초췌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게 하는 건 싫었다. 가능한 한 아름다운 모습을 원했고 헤어와 메이크업은 친한 친구가, 나는 의상을 준비했다. 엄마의 상태가 시시각각 기복이 심했던 터라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을 마쳤다.

이번 <데이즈드>와의 인터뷰에서는 볼 수 없지만, ‘마더’의 후반은 무척 감정적인 다큐멘터리가 주를 이룬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스러져가는 게 내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다. 그런 엄마에게 내 사진의 욕심을 위해 꾸미고 연출할 수 없었다. 엄마와 꼭 하고 싶은 작업이 있었지만, 그보다 죽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엄마가 남긴 유품 같은 사진들이다.

내 곁엔 아직 든든한 엄마가 있으니까 당신의 경험과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 없다. 죽어가는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 돌보는 일, 사진에 가두는 일. 그런 행위가 어떤 의미로 남았나?
호스피스 병동에서 약 한 달 정도 엄마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곳에서 매일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겪고 지켜봤다. 엄마의 임종을 기록하며 진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삶과 죽음의 숭고함을 배웠다.

엄마가 임종하는 순간도 사진으로 남겼다. 윤리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다.
뜻밖에 차분한 분위기와 기분이었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최대한 냉정해지며 엄마 곁을 지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거룩한 감정들이 올라왔고 많이 울었다. 창백한 엄마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적막을 깨는 건 셔터 소리뿐이었다.

엄마의 부재가 익숙해지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엄마 없는 생활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적응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켄 윌버의 책 <켄 윌버의 일기>를 읽으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내의 죽음을 기록한 부분이 있는데, ‘트레야는 내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내 핏속을 흐르고 내 심장 속에서 뛰고 있다. 언제나 내 일부분이기 때문에 기억하기 위해 그 모습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라는 구절이 나를 관통했다.

죽음 이후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나?
한 번씩 무너질 때가 있긴 하지만 보다 단단하고 뚜렷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얼굴을 선명히 기억하기 위해. 우리가 언제 헤어질지 모르니까.

SNS를 보면 당신에게 멋진 친구들이 많아 보인다. 소위 ‘힙스터’라 불리는 친구들이 당신의 삶에 활력이 되어주고 있나?
중학생 시절부터 옷을 좋아했다. 패션 매거진이나 패션 블로그의 멋쟁이를 염탐하면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도 했다. 옷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련 업종의 멋진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됐다. 워낙 자기 색이 뚜렷한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색다른 자극과 즐거운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데이즈드>를 가장 좋아하는 매거진으로 꼽았다.

진심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사진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데이즈드>의 사진을 좋아했다. 친구들에게 나는 꼭 <데이즈드>의 사진가가 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내 개인 작업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나와 내 작업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자신의 작업을 출판 혹은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보일 계획이 있나?
그동안의 작업을 모두 모은 책 한 권을 만들고 싶다. 가끔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연락을 받곤 한다. 그들에게 내 작업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함께 힘을 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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