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MAGAZINE, NO MORE EDITOR-IN-CHIEF

변해야 산다. 현재 서양의 패션 매거진이 주고 있는 변화의 메시지.

Fashion
NEW MAGAZINE, NO MORE EDITOR-IN-CHIEF

Text Jong Hyun Lee

NEW MAGAZINE, NO MORE EDITOR-IN-CHIEF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늘 베일에 싸여 있는 것만 같았던 패션 산업의 단면을 일부 보여주었다. <RUNWAY>라는 가상의 패션 잡지사 생활을 담은 영화는 비슷한 폰트에서도 알 수 있듯 자연스레 <VOGUE>를 떠올리게 했고,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 캐릭터가 미국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공감 백배를 외치게 하는 끔찍한 상사 미란다를 열연한 메릴 스트립과 절정의 미모를 과시했던 앤 해서웨이 때문이었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자극적인 제목 때문이었든 영화는 흥행했고 대중은 잡지사를 영화 속 모습처럼 기억하게 되었다.
편집장의 말 한마디에 6개월을 준비한 컬렉션을 뒤엎는 현실이 패션계의 진짜 모습은 아니지만 그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패션 매거진 수장의 막강한 영향력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안나 윈투어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셉템버 이슈>에서 그녀는 당시 미국 <보그>의 2인자, 그레이스 코딩턴이 고생해서 찍어온 화보를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로 지면에 싣는 것을 거부한다. 수십 시간을 투자해서 완성한 장피의 화보는 안나 윈투어가 몇 초 생각하고 판단한 끝에 버려진다. 물론 그 화보가 <셉템버 이슈>에 실리긴 했지만, 수십 시간의 노력을 단 몇 초 만에 허사로 돌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가 바로 편집장이다.
그러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개봉된 지 10년 하고도 1년이 더 흐른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물론, 안나 윈투어는 지금도 미국 <보그>의 편집장 자리에 있으며, 미국 <보그>를 소유하고 있는 출판 그룹 콩데 나스 (CondéNast)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승진(2013)까지 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미소를 보이지 않는 미란다와는 반대로, 웃는 표정으로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촬영 제안에 응하는 안나 윈투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은 변했다. 선글라스를 쓰고 팔짱을 낀 채 손가락과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에 잡지 산업은 많이 쇠퇴했고 그 결과 잡지는 변화를 거부할 수 없었다. 편집장들은 더욱 젊은 다음 세대들로 교체되었고, 새로운 세대가 직접 편집장이 되어 또 다른 잡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역할은 잡지 시장에 새로운 활력과 변화를 가져왔다.
2015년 6월, <데이즈드> UK는 패션 피처 에디터로 활약했던 이자벨라 벌리를 새로운 편집장(Editor-in-Chief )으로 발탁했다. 20대에 불과했던 그녀의 고속 승진은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데이즈드> UK는 여전히 앞서나가는 매거진의 표본이다. 그리고 이자벨라 벌리는 얼마 전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중대한 발표를 했다. 바로 대대적인 혁신과 개혁을 준비 중인 헬무트 랭의 Editor-in-Residence로 합류하게 된다는 소식이었다(후드 바이 에어의 셰인 올리버도 디자인팀에 합류했다). 한국말로 옮기자면, 전속 에디터. 그녀는 헬무트 랭이라는 의류 브랜드에서 <데이즈드>라는 잡지사의 편집장 역할을 한다. 회사의 모든 부서에서 편집장 역할을 하는 그녀는 하나의 회사와 브랜드의 중심을 잡는 미묘한 역할을 할 예정이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프로필난에는 <데이즈드> UK 편집장이라는 타이틀과 헬무트 랭의 전속 에디터라는 직함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소위 투 잡은 비밀스러운 것이었지만 이젠 능력이자 자랑인 세상을 맞은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듀오, 욥 판 베네콤(Jop van Bennekom)과 헤르트 용커르스(Gert Jonkers)도 마찬가지다. 이들 듀오는 본인들의 첫 번째 매거진 <BUTT>(게이를 주제로 하는)를 2001년 론칭하고 편집장을 맡았다. 2005년에는 <가디언>으로부터 최고의 매거진 20에 선정된다. 그러나 ‘더 이상 만들어낼 새로운 콘텐츠가 없다’는 쿨내 풀풀 나는 솔직한 발언과 함께 돌연 폐간했다. 이후 2005년 그들은 <판타스틱 맨>을 론칭한다. 지금 <판타스틱 맨>이 잡지 시장에서 어떤 존재인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2010년에는 작가이자 큐레이터인 페니 마틴(Penny Martin)을 편집장으로 하여 <더 젠틀우먼>을 론칭했고, 헤르트 용커르스는 발행인이자 부주필(Associate-editor), 욥 판 베네콤은 아트 디렉터로 <더 젠틀우먼>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공식 직함은 발행인과 부주필, 아트 디렉터로 이 듀오가 관여하는 곳은 패션 브랜드 코스(Cos)의 매거진부터 팽귄북스와 함께한 ‘The Happy Reader’까지 더욱 다양하다.
이자벨라 벌리와 욥 판 베네콤, 헤르트 용커르스가 편집장이라는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적극 이용해 다른 방면에서 활약을 했다면, 베를린을 대표하는 두 패션 매거진 <032c>와 <DUST>의 수장 외르크 코흐(Joerg Koch)와 루카 구아리니(Luca Guarini)는 자체적인 의류 브랜드를 론칭하며 기존에 없던 방식의 행보를 보인다. <032c>는 작년부터 틈틈이 잡지의 커버 이미지를 이용하여 만든 담요와 포스터를 판매하더니 이후에는 단순히 잡지의 로고만을 사용한 브로치와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로고와 함께 자극적인 문장의 레터링과 화려한 그래픽을 담은 옷으로 상품군을 대폭 늘렸다. <DUST> 매거진은 <032c>보다 한발 늦게 패션 브랜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DUST> 크리에이티브 팀과 아티스트 페터 데 포터(Peter De Potter)와 협업해 ‘입을 수 있는 페이지’라는 뜻의 ‘DUST CAPSULE / WEARABLE PAGES’를 통해 시작부터 하나의 완성된 컬렉션을 선보였다.
<DUST> 매거진은 매년 두 번의 캡슐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인데, 7번째 이슈에 실린 페터 데 포터의 ‘Young King New Castle’ 시리즈 이미지를 사용한 첫 번째 컬렉션에 이어 최근 벨기에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유르기 페르조온스(Jurgi Persoons))와 함께한 두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외르크 코흐와 루카 구아리니 모두 매거진 안에서 자신의 직책을 편집장 대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사용한다. 패션 매거진에서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패션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와 협업해 옷과 상품을 만드는 영역은 절대 ‘편집장’이라는 이름으로 설명이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작년 12월 타계한 이탈리아 <보그> 편집장 프랑크 소자니를 대신하여 콩데 나스트 소속으로 <Architectural Digest>와 <GQ> 등에서 경력을 쌓은 엠마누엘 파네티가 임명되었다. 지난 4월 10일에는 미국 <W>에서 패션과 스타일 디렉터를 역임했던 에드워드 에닌풀(Edward Enninful )이 알렉산드라 슐만(Alexandra Shulman)에 이어 영국 <보그>의 편집장으로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보그>와 영국 <보그>의 편집장이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도합 54년이다(슐만이 25년, 소자니가 29년).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뀌고서야 패션 매거진을 대표하는 두 곳의 편집장이 바뀌었다. <System>, <Re-Edition>과 앞서 언급한 <032c>와 <DUST> 등 새로 탄생한 독립 매거진이 패션계의 유행과 인기의 바로미터가 된 지금, 엠마누엘 파네티와 에드워드 에닌풀은 변할 수 있을까? 우린 지금 역사의 아주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 이 순간을 놓친다면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한다.

More Fashion
Vejas Kruszewski

Vejas Kruszewski

2016년 LVMH Prize의 파이널리스트에 올랐고 준우승에 해당하는 ‘Special Prize’에 선정된 21세의 베야스 크루스제우스키.

GOT7 Mark
Art+Culture Got7

GOT7 Mark

단순히 행운이라 치부할 수 없다. 보다 더 높이 날아오를, 갓세븐 마크의 궤도.

A-Cold-Wall
Art+Culture Samuel Ross

A-Cold-Wall

현재 런던의 스트리트 패션계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사무엘 로스(Samuel Ross)의 어콜드월. 스트리트 룩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이 거론되는 가운데 그는 오히려 스트리트 룩과 예술이 평행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Onitsuka Tiger × Andrea Pompilio
Fashion Onitsuka Tiger

Onitsuka Tiger × Andrea Pompilio

이탈리아 패션계를 대변하는 안드레아 폼필리오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모험과 변화를 즐기는 그와 오니츠카타이거의 만남, 이 둘의 조합에 실패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