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마틴을 신고 머리를 세우고 다니는 게 펑크 아니다.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을 입어도 펑크일 수 있는 거다.”

바조우를 만났고, 우린 펑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Art+Culture 바조우
“닥터마틴을 신고 머리를 세우고 다니는 게 펑크 아니다.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을 입어도 펑크일 수 있는 거다.”
“닥터마틴을 신고 머리를 세우고 다니는 게 펑크 아니다.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을 입어도 펑크일 수 있는 거다.”

Text Jong Hyun Lee
Photography Yu

“닥터마틴을 신고 머리를 세우고 다니는 게 펑크 아니다.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을 입어도 펑크일 수 있는 거다.”
“닥터마틴을 신고 머리를 세우고 다니는 게 펑크 아니다.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을 입어도 펑크일 수 있는 거다.”
바조우가 기획한 전시.
“닥터마틴을 신고 머리를 세우고 다니는 게 펑크 아니다.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을 입어도 펑크일 수 있는 거다.”
“닥터마틴을 신고 머리를 세우고 다니는 게 펑크 아니다.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을 입어도 펑크일 수 있는 거다.”
바조우가 기획한 전시.

 

 

10꼬르소꼬모와 함께 ‘펑크’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마냥 기쁘다. 영국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오리지널 펑크 문화를 보고 자란 나와 친구들이 이 전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기존의 10꼬르소꼬모가 진행했던 <Punk in Britain> 전시에 바조우(Bajowoo)가 디렉팅한 <Our Nation> 전시가 합쳐졌다. 어떤 것을 보여주고자 했나?
펑크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많이 변했다. 1970년대 영국의 오리지널 펑크가 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펑크가 또 다르다. 거기에서 영향을 받은 일본의 펑크도 있다. 나는 현재진행형의 펑크를 담고 싶었다. <Punk in Britain> 전시 공간은 1970년대를 담고 있고, 나는 2017년의 모습을 담았다. 펑크 마니아들 사이에선 1977년이 펑크의 최고 전성기라고 이야기한다. 그 시절부터 지금 2017년까지, 40년간의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다.

‘Our Nation’이라는 주제에는 어떠한 메시지를 담고자 
했나?
단어 그대로 ‘우리의 국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단, 흔히들 생각하는 펑크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펑크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담고 싶었다. 겉모습이 펑크가 아니고 펑크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DIY(Do It Yourself )식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이 시대의 펑크라고 생각했다. 펑크 밴드가 아닌 혁오 밴드의 CD와 티셔츠, 디제이 킹맥과 코난, 타투이스트의 사진을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장르와 취향을 불문하고 같은 것을 느끼고 공유한다면 그게 우리의 세상인 거다.

패션 디자이너 바조우가 아닌 디렉터 바조우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는데, 어떤 차이를 느꼈나?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웃음). 나는 원래 디자인을 할 때도 그 당시 내가 좋아하는 문화와 즐겨 듣는 음악,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 등 일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한다. 이번 전시도 평소에 내가 즐기던 문화와 음악인 펑크를 주제로 했기 때문에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옷이 아닌 물건을 보여주는 것의 차이였다. 그러나 옷은 컬렉션에서 짧게 보여주지만 전시는 한 달 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하나의 테마를 보여주기보다는 여러 가지 섹션을 통해 다양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Punk in Britain> 전시를 본 소감은 어떤가?

개인적으로 이 전시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이런 주제의 전시를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이 정말 바뀌는구나 싶었다. 친구들과 함께 전시장에 갔는데,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봐온 사진들이 실물로 눈앞에 있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우리 모두 닭살이 돋았다(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

제이미 리드의 ‘Jamie Reid, Nice work by nice lady, (part.) 1977’. 처음 보는 작품이었고, 유일하게 판매되지 않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대중적으로 펑크 하면 시드 비셔스라는 상징적인 아이콘을 떠올린다. 바조우의 펑크 아이콘은 누군가?
나는 쟈니 로튼의 영향을 받았다. 나도 처음에는 시드를 좋아했다. 일단 겉모습이 멋있고, 펑크라는 이미지와도 딱 맞아떨어지니까. 그런데 시드가 왜 시드일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고, 쟈니 로튼의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이유와 생각들을 알게 되면서 쟈니 로튼을 더 좋아하게 됐다.

한국의 펑크는 지금 어떤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나?
한국의 펑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았다. 신으로만 보면 확실히 작아지긴 했지만, 지금은 펑크가 아니어도 과거 펑크족이 하는 짓을 똑같이 따라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지금 힙합 음악을 하는 친구들도 펑크 문화에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펑크를 되게 유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예전처럼 닥터마틴을 신고 머리를 세우고 다니는 게 펑크가 아니다.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를 신고 추리닝을 입어도 펑크일 수 있는 거다.

펑크라는 정체성을 지닌다는 게 초기 브랜드를 알리고 바조우를 설명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어떤 틀에 갇힐 위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나를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바조우라고 말하거나 99%is-라고 말한다. 내가 디자이너라고 말하는 순간 디자이너에 갇혀 버리는 거다. 나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 사람이다. 언젠가 새로운 곳에서 두각이 드러나면 그 일을 평생 할 수도 있는 거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선보인 공연도 그런 의
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번 시즌 나는 런웨이 컬렉션을 선보이는 대신 내가 기획한 공연을 서울패션위크 기간에 보여줬다. 패션 브랜드가 쇼를 하지 않는다는 건 비즈니스를 단절시킨다는 것이고 나로서는 치명적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선보인 이유는 옷이 아닌 공연을 통해 나의 패션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완벽함을 보여주기 이전에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거 같다.
최근에 꿈이 바뀌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만드는 게 현재의 꿈이다. 1970년대 탄생한 펑크 문화 이전에 스킨헤드와 로커, 모즈 문화가 있었고 이후 히피와 힙합, 레게 등 새로운 문화가 지속적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내 시대 때는 그런 게 없었다. 나는 남이 만든 문화의 최고가 되고 싶지 않다. 예를 들어 디스코 음악의 장인이 되기보다는 디스코 음악을 만든 사람이나 그 주위의 친구가 되고 싶다.

모든 문화의 중심에는 음악이 함께했다. 뮤지션들과 어울
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선가?
나는 음악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장을 만들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밴드와 밴드 사이에 디제잉을 섞었다. 원래 밴드와 밴드 사이에는 노래가 꺼지는 게 일반적이다. 근데 디제잉은 끊기는 게 없다. 밴드 음악과 디제잉을 섞는 방식이 있을 법도 한데 없었다. 이번 공연에서 나는 이 새로운 시도가 괜찮은지 관객들의 호응을 보면서 체크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으는 것’밖에 없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엔 새로운 것이 나올 거라 믿는다.

디자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99%is-의 옷에서는 한글
이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위해 일차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에게 99%is-의 한글 요소를 어떻게 설명하고 싶나? 굳이 한글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일단, 한국적인 요소로 국가를 대변해야 한다는 식의 의무감은 없다. 나는 영어보다 한국어를 잘 쓴다. 단지 그뿐이다. 한국말의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느낌, 내옷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불안정이 안정’ 이라는 말을 나는 영어로 표현 못 한다. 근데 한국어로 했을 때 나는 그 문장의 의미와 느낌을 잘 살릴 수 있고, 그 의미를 궁금해 하는 외국 친구에게는 설명을 잘해준다. 한국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다. 외국의 힙합 문화를 보면 일부러 틀린 영어를 쓴다. 술 먹었을 때 꼬이는 발음처럼 일부러 틀리게 쓰는 거다. 나는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면 그들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한국에서 ‘Dope’라는 단어를 써봤자 절대 와 닿지 않는다. ‘짱!’, ‘죽이네’ 이런 촌스러운 말이 더 와 닿고 맞는 거다. 이런 방식으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게 힘이고 잘하는 거다. 나는 그걸 하는 거다.

초창기 컬렉션이 전체적으로 미니멀한 디자인에 레더 소
재와 펑크의 몇 가지 요소만 가져온 것에 비해, 최근의 컬렉션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펑크족’답게 더욱더 화려하고 과장된 것 같다. 갑자기 다른 브랜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처음 컬렉션을 선보일 당시 미니멀하게 했던 이유는 그 당시에 펑크를 미니멀하게 푸는 방식이 더 힘든 상황이자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컬렉션이 변한 것뿐이다.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초첨을 맞췄다”라는 말

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말로 해석해도 괜찮을까?
내가 어렸을 때 만든 옷과 지금 만든 옷이 똑같은 게 많다. 그런데 초기 컬렉션에는 선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마니악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의 취향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트렌드를 맞춘다기보다는 편해졌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나의 과격함이 통하는 시대가 된 거다(웃음).

바조우가 펑크 이외에 다른 것을 선보일 날이 있을까?

펑크는 당장 내일이라도 관둘 수 있다. 펑크만 고집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다. 그런 틀에 갇히는 순간 발전은 없다. 그리고 내가 만약 펑크를 버리고 힙합을 한다고 해도 그게 과연 새로울까?

“내가 만든 옷을 더 많은 사람들이 입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인터뷰를 봤다. 99%is-의 옷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나?
내가 만드는 옷이 특정 흐름이나 세상을 바꿀 힘은 없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그리고 어떤 문화가 생겨났을 때 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옷을 내가 만들 수는 있다. 모든 문화에는 거기에 맞는 복식사가 있다. 나는 문화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그 문화에 제안할 수 있는 옷만 만들 뿐이다.

More Art+Culture
MILANO DESIGN WEEK
Art+Culture

MILANO DESIGN WEEK

패션위크와 함께 회자되는 가구 & 디자인 페스티벌 ‘밀라노 디자인 위크(MDW) 2017’이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밀라노 전역에서 진행되었다. 명민한 패션 하우스들은 미리 눈여겨봐둔 솜씨 좋은 아티스트와 손잡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번 무대에서 프리마돈나를 꿈꿨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대표하는 가구 박람회(Salone di Mobile)장의 안과 밖, 그리고 도시 곳곳에서 펼쳐진 더 재미난 번외 편인 푸오리 살로네(Fuori Salone)에 관한 리포트를 전한다.

GOT7 Mark
Art+Culture Got7

GOT7 Mark

단순히 행운이라 치부할 수 없다. 보다 더 높이 날아오를, 갓세븐 마크의 궤도.

A-Cold-Wall
Art+Culture Samuel Ross

A-Cold-Wall

현재 런던의 스트리트 패션계에서 강력한 힘을 지닌 사무엘 로스(Samuel Ross)의 어콜드월. 스트리트 룩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이 거론되는 가운데 그는 오히려 스트리트 룩과 예술이 평행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타투이즘
Art+Culture

타투이즘

런던과 서울을 대표하는 타투이스트, 막심 부치(Maxime Buchi)와 아프로 리(Apro Lee). 그들은 현재 타투 컬처의 중심에 서 있다.

MOTHER
Art+Culture

MOTHER

사진가 양동민의 엄마는 죽었고, 사진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