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hii Yuya

겨울바람 부는 날 서울 압구정동에 영화감독 이시이 유야가 있었다.

Ishii Yuya

Text & Photography Ji Woong Choi

Ishii Yuya
Ishii Yuya

1983년에 태어난 영화감독 이시이 유야의 외모와 말투는 자못 차분해 보이지만 그는 영화를 통해 현대 일본 사회를 향한 ‘화’와 ‘분노’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온 단단한 감독이다. 2005년 오사카 예술대학 졸업 작품인 <무키다시 닛폰>으로 피아 영화제 대상과 음악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행복한 사전>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쓸며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갈 ‘젊은 거장’, ‘제2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수식에 이시이 유야를 가두는 일은 어리석다. 그는 그의 영화를 만든다. 이시이 유야는 단지 이시이 유야일 뿐이다.

서울은 언제 왔나? 이곳에 오기 전 당신이 머문 도시는 어떤 곳인지도 궁금하다.

서울에는 어제 저녁에 도착했다. 내 삶의 터전은 도쿄다. 오사카에서 대학교를 다녔는데, 졸업한 학교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웃음). 일 년에 한 번은 꼭 강의를 해야 하는 조건이 있어서 며칠 전 오사카 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다시 도쿄에 들렀다가 서울로 온 거다.

우리가 만난 오늘 밤 당신의 신작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상영된다.
일본 시인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을 기본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의 출발이 궁금하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최근 일본에서는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삼는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중이다. 129스토리가 탄탄하고, 잘
팔리기 때문이다. 현대 도쿄에 사는 젊은이들의 기분을 표현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프로듀서가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을 들고 왔더라. 소설이나 만화와는 달리 시에는 이야기는 없지만 기분이랄까, 감정이 있으니까 그걸 영화로 표현하면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을 만나러 오기 몇 시간 전 이 영화의 스크리너를 봤다. 시집에도 등장한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대목이 있더라.
‘도시를 좋아하게 된 순간, 자살한 거나 마찬가지다.’ 비관과 허무가 가득한 극단의 언어를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시대의 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너무 많은 말이 범람하는 시대이다 보니 말 그 자체를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예를 들어 사이하테 타히의 시에는 죽음, 살인, 자살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나는 이 시인이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사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면에 있는 전혀 다른 의미를 끄집어내려 한 것처럼 보인다. 그 부분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배우 이케마츠 소스케가 연기한 ‘신지’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캐릭터다.
그가 바라본 세상의 이미지가 독특한 방식으로 촬영되기도 했다. 단순한 설정은 아닌 듯 보였다.

맞다. 단순히 시각 장애를 표현하려던 건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느끼는 감정이지 않을까 싶은데, 앞으로의 세계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 어두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이미지와 편집이다.
시의 언어와 리듬을 영화로 옮기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촬영과 편집에 기존 작업보다 신경 쓴 게 사실이다. 도쿄라는 대도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감정이 있다고 본다.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컷과 컷이 붙는 리듬감과 몽타주에 공을 들였다. 하나의 감정을 역순으로 계산해서 장면을 만들어갔다.

나는 서울에 사는 젊은이다. 도시에 살기 위해선 매일 여러 감정을 혼자 삼켜야 하는 것 같다.
가끔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당신에게 도쿄는 어떤 곳인가? 어떤 의미인가?

당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도쿄와 당신의 서울은 완전히 같다.

영화 속 ‘신지’는 2020 도쿄 올림픽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올림픽 이전과 이후 일본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 것 같나?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회복할 수 있을 거란 긍정적인 전망이 많다.

거짓말이다. 그런 식의 주장은 순전히 아베 총리의 기만일 뿐이다. 일본은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국가 자체가 작아진 상태다. 그건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건설 붐이 일어 호황인 척하지만 그건 가짜로 만들어진 허상이라 생각한다. 요란한 잔치가 끝나고 나면 아마 지금보다 더 허무하고 처참한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게 내 의견이다. 그 거짓말을 영화에 녹여내서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당신은 영화에 일본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버블 경제, 노후 문제,
지나친 개인화 등의 현상을 담아왔다. 시대와 사회의 초상과 당신이 만드는 영화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그런 문제들로부터 벗어나려 해도 그럴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내가 만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니까 그 부분을 빼놓고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통해 정치적 운동을 하거나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단지 내가 작업하는 영화라는 매체 안에 나의 생각을 투영할 뿐이다.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흡수시키고 싶다.

배우 이케마츠 소스케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정확히 일 년 전 <데이즈드>는 이케마츠 소스케를 만났다.
무척 신중하고 굳건한 배우였다. 당신의 영화에 그는 세 번 연속 출연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게 영화는 인생을 건 승부다. 그런 생각으로 현장에 간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 내게 영화는 단순한 예술 활동이나 비즈니스가 아니다. 그러니까 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무척 중요한 존재다. 이케마츠 소스케는 목숨까지 내놓은 내 승부에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배우다. 연기력의 문제를 넘어 영화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열정을 가진 배우다.

영화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는 당신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무모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영화의 어떤 점이 당신을 무모하게, 아니면 용감하게 만드는 걸까?

영화는 결코 혼자 만들 수 없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수많은 스태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쳤을 때 태어난다. 그 순간에 내가 있다는 것, 그 기적을 목격할 때 주체할 수 없게 흥분된다. 그 흥분이 잊히지 않는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고통의 연속이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많지만 그 흥분을 알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이케마츠 소스케 외에 츠마부키 사토시, 오다기리 죠, 마츠다 류헤이 등 한국에도 팬이
많은 스타들과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당신 영화의 매력인지,
아니면 일본 영화계가 개방적인 편인지 궁금하다.

이건 내가 대답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웃음)? 단지 내 생각을 말하자면, 나는 배우에게 제안할 때 ‘이번 작품은 나의 모든 것을 건 승부다. 이 영화를 통해 당신을 빛나게 할 것이다’라는 진심을 전하려 애쓴다. 그들이 내 열의를 느꼈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함께하고 싶은 배우에게 거절당해본 적은 없다.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척 회의적인 사람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역시 그런 기조를 유지해서 좋았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옅은 희망을 품으며 끝난다. 진심인가?
이 세계에 일말의 희망이 있다고 믿는 건가?

(웃음) 오늘 대화 내내 회의적인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 말했듯 희망 없는 세계라는 나의 주장은 변함없다. 영화이기 때문에 희망을 암시하는 근거 없는 위로를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듯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 진짜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새로운 반증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희망’이 아니라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다. 앞으로 희망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동기부여도 없다면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겠나.

영화를 보고 나서 단어 하나가 맴돌았다. ‘꿈’. 마냥 오글거리고 뜬구름 같은 그 말. 텅 빈 말.

‘꿈’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내게도 원대한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적한 곳에 작은 집을 짓고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지내는 게 꿈이다.

‘화’와 ‘분노’는 여전히 당신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인가?

(한참 생각을 하다가) 20대에는 그랬다. 그때와 지금의 감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화와 분노, 위화감 같은 열등의 감정은 내가 삶을 살아갈 때, 영화를 만들 때 중요한 기본이 된다.

인터뷰는 끝이다. 자필로 요즘 자주 생각하는 문장과 당신의 사인을 부탁하려 한다.

나의 센스를 테스트하려는 건가(웃음)? ‘사랑이든 우정이든 결국은 손때 묻은 말이 중요하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늘 진짜 사랑이 있는지, 진짜 우정이 있는지 의심한다. 하지만 결국 그 손때 묻은 말로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감독인 내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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