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re, Epee, Fleuret

홍효진은 칼끝의 꽃을 겨눈다.

Sabre, Epee, Fleuret

 

Text & Photography Ji Woong Choi

Sabre, Epee, Fleuret

펜싱은 칼의 종류에 따라 사브르(Sabre), 에페(Epee), 플뢰레(Fleuret)로 나뉜다.
흰 유니폼과 날렵한 동작은 예술이라 할 만큼 화려하다. 홍효진은 플뢰레 여자 펜싱 국가대표다.
칼끝에는 꽃(Fleur)의 모양을 한 전자 버튼이 있다. 그 꽃을 상대의 몸에 내려꽂는 자가 승자다.
홍효진은 치명적이게 아름다운 결전을 치르는 투사다.

Sabre, Epee, Fleur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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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re, Epee, Fleuret
Sabre, Epee, Fleuret
Sabre, Epee, Fleuret
Sabre, Epee, Fleuret

솔직히 내게 펜싱은 아직 낯설고 어렵다.

(웃음)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럴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원래는 귀족의 운동이기도 했다. 지금은 소위 비인기 종목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지난 올림픽 때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동호회나 클럽이 많아졌다. 예전보다는 대중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효진 선수는 어떻게 펜싱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초등학교 때 육상부였다.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거기 펜싱부가 있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데 펜싱 감독님이 나를 부르더니 “펜싱 한번 해볼래?” 물어보시더라. 그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왔다.

(웃음) 유명한 운동선수의 삶을 결정하는 건 어린 시절 감독님의 “한번 해볼래?”라는 아주 가벼운 제안인가 보다.

(웃음) 어릴 때는 학교 수업 중간에 운동하고 하니까 그게 좋아서 했던 것 같다. 선수로서 꼭 이루고 싶은 뭔가가 있던 건 아니다. 그러다 장래를 생각해야 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 그때부터 제대로 동기부여가 됐다. 펜싱으로 대학도 가고 돈도 벌어야 한다는 목적이 생긴 거다.

이제 펜싱이 효진 선수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나?

직업이지. 사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학교 다니거나 취업 준비하거나 하는데 나는 나름대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친구들처럼 여행 가고 싶을 때 가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싶기도 하고.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시대다.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웃음).

맞다(웃음). 친구들 보면 진짜 힘든 것 같더라.

마스크라고 하나? 이 가면이나 칼이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무겁고, 단단하고, 차갑고, 예리하다.

칼에 찔리면 옷이 찢어지거나 (발목의 멍 자국을 내보이며) 이렇게 멍이 든다. 진짜 아프다(웃음). 연습할 때도 보호 장비를 꼭 착용해야 한다.

마스크가 내 마음에 꼭 든다. 이거 너무 멋지다. 그런데 이거 쓰면 앞이 잘 안 보일 것 같은데?

이거 직접 써봐도 된다(웃음). 우려와 달리 앞이 아주 잘 보인다. 작은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평소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더 잘 보이기도 하니까.

내가 생각할 때 사람과 사람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선 제압이 아닐까 한다. 거기서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다(웃음). ‘눈빛’으로 우선 상대를 제압해야 할 텐데, 펜싱은 상대의 눈이 안 보이잖아.

소리. 기합으로 상대의 기를 꺾는 거다.

최근 프랑스 생모르에서 개최된 ‘2017 프랑스 생모르 여자 플뢰레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축하한다.

(웃음) 고맙다. 진짜 우승은커녕 64강까지 올라가는 게 내 꿈이었다. 여차해서 예선을 통과했고, 정말 어쩌다 보니 우승한 거다. 아직 나도 신기하다(웃음).

운동선수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나(웃음)? 좀 멋지게 포장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운이든 뭐든 결승전 진출이 확정됐을 때는 욕심이 났을 법도 하다. 사람이니까.

그럴 정신도 없었다. 초반에는 워낙 큰 점수 차로 밀렸다. 긴장이 많이 됐는데, 그 순간 마음을 비우게 되더라. 그랬더니 차근차근 하나씩 내 기술이 잘 통하더라고. 뭐 그런 식으로 어떻게 하다 보니 우승해버린 거다(웃음).

운동선수의 목적, 존재 이유는 우승인 것 같더라. 처음에는 안타까웠는데 그런 동기부여도 없으면 힘든 훈련을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효진 선수는 그런 압박은 없는 사람 같아서 좋아 보인다.

꼭 1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약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것 같아서. 그냥 나에게 주어진 몫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초반에 잠깐 이야기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 팀 소속이 됐다. 나는 여전히 돈을 받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회사원이다(웃음). 회사원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를 평가받고, 월급 받는 것과 똑같다. 나는 시합으로 실적 평가를 받는 거다.

나도 회사원이니까 한 번씩 못 해먹겠다는 생각을 한다(웃음). 월급날 그 생각을 다 잊어버리지만.

(웃음) 같은 팀 언니들과 그런 이야기 자주 나눈다. 힘들게 훈련 마치고 둘러앉아서 “무릎이 나갈 것 같다”느니 “그만두고 싶다”느니 그런 푸념을 하다가 결국 “곧 월급날이야”, “그만두면 할 거 없잖아”로 끝난다(웃음).

그래도 운동선수에겐 아주 정확하고 영광스러운 목표가 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연달아 열린다.

나도 당연히 그런 큰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선 하루하루 주어진 훈련과 크고 작은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게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되면 좋고, 안 되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후회 없이 노력하는 게 중요한 거다.

운동선수들의 역사적인 장소인 태릉선수촌을 떠나 진천선수촌에서 생활과 훈련을 하고 있다.

거기 진짜 크다(웃음). 시골이다(웃음). 주변에 논밭밖에 없어서 야식 같은 걸 먹으려면 차 타고 한참 나가야 한다. 배달도 잘 안 되는 산골이다. 운동하기에는 진짜 좋은 조건이랄까? 운동과 관련된 모든 시설과 장비가 거기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진천선수촌 앞에 야식집을 차리는 사람이 승자겠다.

(웃음) 맞다. 선수들끼리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이걸 보는 누군가 빨리 나서주길 바란다.

혹시 본인이 예쁜 거 알고 있나(웃음)? 외모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피어싱과 특히 장갑을 끼지 않은 왼손의 네일 아트와 액세서리가 재미있다.

(웃음) 예쁘다고는 생각 안 한다. 절대. 오히려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오른손은 장갑을 껴야 하니까 왼손에 몰아주기 하는 거다(웃음).

지난 올림픽 때 여성 펜싱 선수들이 경기에 몰두하다가 마스크를 벗었을 때 귀고리가 눈에 들고 화제가 되곤 했다. 혹시 그걸 노린 건 아닌가(웃음)? 다음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가정 하에 주얼리 브랜드에서 그런 제안이 온다면 응할 수 있나?

(웃음) 그걸 노린 건 절대 아니고, 제안이 와도 못 할 것 같다(웃음). 부끄럽다.

10년 정도 펜싱 선수의 삶을 살았다. 그래도 아직 20대 초반이다.

그러게 벌써. 지금은 펜싱 선수로 사는 일이 좋은데, 아니다 싶을 때 딱 그만둘 거다.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지도자가 될 마음도 없다. 펜싱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싶다.

뭘 하고 싶나?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다(웃음).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하고 듣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찾아서 자격증도 따고 노력하며 사는 삶, 그게 부럽다.

펜싱 선수 하면서 돈 열심히 모아 작은 카페 주인 하면 되겠다.

(웃음) 그러게, 열심히 돈 모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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