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거나 보거나
Led Zeppelin <Physical Graffiti>
토요일 이른 아침, 전날의 숙취 혹은 한 주간의 피로를 잠재울 시간에 일찍 잠에서 깬다면 당신은 무슨 음악을 떠올릴 수 있나? 레드 제플린의 ‘Kashmir’를 다시 듣게 만든 주역은 준야 와타나베다. 매 시즌 토요일 아침 9시 30분, 준야 와타나베는 언제나 자기 컬렉션을 이 시간에 선보이는데,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 준야 와타나베로 아침을 시작하는 토요일은 느와 케이 니노미야가 바통을 잇고, 오후엔 꼼데가르송이 쇼를 하는, 그야말로 꼼데가르송의 날이다. 우리가 짐작하는 그 펑크를 아침 댓바람부터 관찰하고 감상하는 일은 컬렉션이 좋든 나쁘든 웃음이 날만큼 어떤 의미에서 유희라 할 수 있다. 준야 와타나베는 아랑곳하지 않고 로큰롤을 귀가 떨어질 만큼 크게 틀어놓는다. 대체 이런 그의 기행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궁금해하면서, 이런 그에게 또 반하고, 그가 택한 레드 제플린을 다시 들춰본다. ‘Kashmir’가 수록된 커버 디자인은 뉴욕 맨해튼의 퍼스트 애비뉴와 애비뉴 A 사이 세인트 마크스 플레이스 길 위에 있는 실제 건물이 배경이다. 건물 창문에는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즈월드부터 닐 암스트롱, 엘리자베스 테일러, 킹콩, 성모마리아 등의 초상화를 넣었는데, 즉 당대 화제의 인물, TV가 없었다면 전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캐릭터가 분명한 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는 당대 미디어의 엄청난 파급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카슈미르는 지금도 여전히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을 만큼 우리에게는 먼 도시지만, 우리는 레드 제플린의 아랍풍 멜로디와 기타 연주로 그곳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로큰롤 정신, 즉 시대를 향한 고발과 반항은 곡을 비롯해 앨범 커버에도 깃들어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한편 레드 제플린은 비주류의 실험적 음악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밴드라는 걸 알고 있는지. 그는 세상의 아무개든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는 미디어 생산자와 컬트 신scene마저 무지성으로 열린 수용을 일삼는 소비자의 관계를 정확히 꼬집고 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레드 제플린의 막대한 반항 정신과 자부심을 담은 만큼 여봐란듯이 두 장으로 구성했으며, 커버 디자인도 두 가지다. 그의 저항 정신에 준야 와타나베 역시 본능적으로 교집합을 감지했을 거라 믿고, 나는 그들의 연결 고리를 관망하며 그 둘이 뭐가 됐든 ‘좆 까라’ 자기 길을 선택하는 데 열렬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바다. 그리고 한 가지 사담은, 지금 그 건물이 맨해튼에 아직도 존재하고 1층에 베트남 샌드위치 가게와 ‘Physical Graffitea’라는 유기농 찻집이 들어서 있다는 걸 덧붙여야겠다. 그러니까 시대적 반항이 그리 거창한 데서 시작하고 끝나는 건 아니기에 더 마음껏, 실컷, 조그마한 반항이라도 시도하고 공표할 줄 아는 용기, 그게 중요하다니까.
Antony And The Johnsons <I Am A Bird Now>
여전히 앤서니 앤 더 존슨스의 노래를 듣는다. 몸 어디쯤이 뻐근하다. 깊고 검은 물에 풍덩 빠진 듯 우울해진다. 우울함에 깃든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저 속에서부터 울듯 하는 그의 목소리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우울은 어떤 위험도 감수하게 만드는 터무니없는 용기의 원천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우울함에 전이되며 공동체를 이루어왔으니, 그 속에 머무는 것은 꽤 그럴듯한 일이라는 믿음, 안락, 기도. 앤서니 앤 더 존슨스의 2005년 앨범 는 빛과 생명, 어둠과 죽음 사이 그 어디쯤을 노래한다. 정체성은 평생의 화두이자 골칫거리였다. 루 리드와 보이 조지, 루퍼스 웨인라이트는 차라리 한 마리 새가 되어 저 멀리 날아가라며 다독인다. 에이즈로 요절한 사진가 피터 휴아르가 찍은 ‘Candy Darling on Her Deathbed’가 앨범 커버를 장식한다. 앤디 워홀의 슈퍼스타이자 트렌스젠더 아이콘으로 이름을 떨친 캔디 달링이 마릴린 먼로 분장을 한 임종 초상 사진. 사는 게 지겹거나 하찮게 여겨질 땐 앤서니 앤 더 존슨스와 피터 휴아르, 캔디 달링, 마릴린 먼로,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사이에 숨어 웃기지도 않은 춤을 춘다. 그럼 묘하게 다시 살아진다. 사진 속 속절없이 만개한 저돌적인 꽃들처럼. 새하얗게. 눈치 없이. 난폭하게.
Philip Glass <Einstein on the Beach>
미니멀리즘 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가 1976년 무대예술가 로버트 윌슨과 협업해 오페라로 공연되기도 한 앨범. ‘I♥NY’ 로고를 제작한 미국의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앨범커버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이 앨범을 위해 푸투라Futura 서체에서 아인슈타인Einstein 서체를 만들고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했다. 프롤로그를 지나 첫 악장의 첫 곡인 ‘Train’으로 이 앨범에 탑승하면 그의 오페라가 그리는 흐름에 강제로 몸을 맡길 수밖에 없게 된다. ‘Trial’과 ‘Night Train’ 같은 곡에서는 곡 중 재판을 받는 상황 혹은 고속으로 이동하는 물체에 탑승한 상태처럼 불가항력인 상황에 빠져든 느낌을 받으며, 그렇게 스페이스 오페라에 강제로 탑승당한 채 어떠한 저항도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비선형적인 내러티브의 오페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몰아치는 리듬과 멜로디의 반복, 그리고 그 간극에서 느껴지는 작은 자신과 비교해 거대한 우주와 운명의 크기는 이 스페이스 오페라, 그리고 우주에 대한 경외감과 감동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Hyukoh <23>
항상 혼란의 연속이었고, 애매한 뜨거움 같은 것이 계속 가슴속에서 꾸물대던 나의 스물셋. 또래의 현실이 담긴 노래가 유독 자주 귓가에 맴돌았다. 이를테면 혁오의 첫 정규 앨범인 <23>. 나는 수록된 노래뿐 아니라 음악과 밀도 높게 어우러지는 아트워크를 특히 좋아했다. 노상호 작가의 그림이며, 상상력에 기반한 특유의 감각으로 장면의 조각을 연결해 새롭게 구성하는 화면이 인상적이었기 때문. 작가가 스스로를 '얇은 사람'이라 부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울분을 토하는 듯한 <23>의 거칠면서도 따뜻한 그림은 그때의 복잡한 감정들과 닮아 있고, 서글펐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것만 같다. 행복과 열정이 공존하는 앨범으로 내가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다.
Nicki Minaj <Queen>
나의 영원한 퀸, 현존하는 최고의 여성 래퍼 니키 미나즈의 정규 4집 앨범 . 어수선한 힙합 신에서 오직 자신만이 랩의 여왕임을 증명하는 이 앨범의 커버는 다름 아닌 그의 전신 사진이다. 고대 이집트 여왕을 연상시키는 니키 미나즈의 구슬 장식 옷과, 석양 아래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의 당당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피처링으로 도배된 팝을 비웃듯 자신의 가사를 직접 읊는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최고이길 바란다.
Sheena Ringo <Muzai Moratorium - Innocence Moratorium>
내 인생에서 가장 일탈의 순간으로 꼽을 수 있는 연애가 떠오르는 이 앨범은 당시 애인이 추천해줬다. 때문에 조금 거창할 수 있지만 내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북적거리는 인물들이 담긴 앨범 아트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번잡함과 불안함에는 눈보다 마음이 먼저 간다. 앨범 아트 속 한 남성이 들고 있는 한자어 무죄 모라토리엄無罪 Moratorium은 ‘유예 기간이 지난 청년이 어른이 되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 말. 나 역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꽤나 와닿는 문구다. 어째 열렬히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이 비좁은 행사장에 ‘낑겨’ 셀럽 인사말을 따고 있는 내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Kanye West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개인적으로 카녜이 웨스트의 5집 의 앨범 커버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카녜이 웨스트가 2009년 MTV VMA 무대 난입 사건 이후 대중의 비판에 못 이겨 하와이로 ‘자진 망명’해 제작한 앨범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을 예술가적 관점 또는 영감으로 해석했고, 모든 걸 쏟아부어 예술 작품(5집 앨범)을 내놓았다. 카녜이 웨스트는 타고난 심미안으로 앨범 커버에도 맹렬히 관여했고, 현대미술 작가 조지 콘도에게 앨범 커버의 그림을 맡겼다. 큐비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조지 콘도는 카녜이 웨스트의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 다섯 점의 그림을 거침없이 선보였다. 그중 새빨간 배경에 성별을 알듯 말 듯한 두 생명체가 뒤엉켜 있는 그림과 초록색 배경에 술잔을 들고 있는 발레리나가 대표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이 앨범에서 그림보다 더 중요한 건 카녜이 웨스트가 새로운 문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현대미술 바깥 영역에 있는 사람이 현대미술 개념을 차용해 자기 분야인 힙합과 대중음악에 접목한 것. 즉 서로 다른 두 문화를 연결했다는 말인데, 이는 요즘 시대에 중요한 창작 개념이다. 새로운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창작한다는 건 이음새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닐까? 카녜이 웨스트 5집 앨범을 ‘무한 반복’하기를 권한다.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에서 역전과 전복하기를 바라며.
Tyler, The Creator <Flower Boy>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단숨에 오리지낼러티를 얻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괴짜처럼 개성 강한 그의 행보는 작업물 곳곳에 녹아 있다. 높은 채도와 패턴을 패션과 음악에 거침없이 활용하는 타일러는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2017년에 발매한 정규 4집 앨범 도 그렇다.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를 연상시키는 이 앨범은 데페이즈망 기법을 활용해 초현실적 무드가 느껴진다. 풍수지리를 믿진 않지만 현관 앞에 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해바라기까지 가득. 집에 두면 복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사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를 사러 갔다가 커버만 보고 덥석 구입한 앨범이다. 알맹이보다 껍데기를 더 보았다니. 글쎄, 후회는 없다.
FKA Twigs <MAGDALENE>
FKA 트위그스의 앨범 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매슈 스톤이 아트 작업을 했다. FKA 트위그스는 이 앨범을 설명할 때 ‘나의 신성한 영역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있겠니?’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아직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자전적이면서도 내면의 인간미에 대한 고찰은 혼재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로 드러난다. 더불어 회화 같기도, 한편 조각 같기도 한 매슈 스톤 특유의 혼란스러운 표현 기법이 아주 잘 어울린다. 마치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나아가는 FKA 트위그스의 자화상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어 가장 인상적인 앨범 아트로 꼽는다.
이소라 <눈썹달>
과거 입시곡으로 이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인 ‘Tears’를 연습한 기억이 있다.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친구들과 부대껴 지내던 좋은 기억도 많지만, 막연하고 깊은 절망감 같은 감정도 동시에 느끼던 때다. 그 시절 내게는 이 앨범의 우울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가사와 멜로디가 큰 위로가 됐다. 개인적으로 우울을 더 깊은 우울로 푸는 편이라, 우울할 때면 여전히 이 앨범의 트랙을 쭉 찾아 듣곤 한다. 앨범 초판에는 여섯 번째 곡 ‘듄’을 소개하는 페이지에 디올의 향수 ‘듄’의 향기가 입혀져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금방 날아갔겠지만. 가만 보면 달 옆에 박음질되어 있는 별들이 꼭 달이 흘리는 눈물 같기도 하다.
St. Vincent <Masseduction>
애니 클락이자 세인트 빈센트인 그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끼는 편이다. 고작 전위나 탈피라는 말로 그를 규정하게 될까 봐. 아무튼 나는 전형적으로 예쁜 얼굴에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그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은 오묘하게 불친절하고 제멋대로이며, 때로는 장난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니까. 세인트 빈센트의 은 그가 낸 앨범 중 가장 착하지 않다는 점에서 치명적이고 근사하다. 묘한 자세를 취한 한 여성의 다리가 새빨간 배경과 어우러진 앨범 아트는 경박하고 천박해 보이기 딱 좋은 모양인데, 그게 바로 내가 이 앨범 커버를 좋아하는 이유다. 어쩌면 ‘볼 테면 봐봐’ 하는 그의 과격한 자신감을 동경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얼굴을 하고 ‘We’re not meant for this world(너와 나는 이 세상에 속할 사람이 아니야)’라며 운을 떼는 이 앨범은, 내겐 그 어떤 이야기보다 설득력 있다.
Text <DAZED> Korea Editoral team
Art Ha Su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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